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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재물욕은 인간의 실체 밝히는 열쇠…소설가 삶 후회 없어”

입력 | 2023-11-20 14:26:00

장편소설 '황금종이' 출간




“이번 소설은 제 작가 인생 후반기를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4년 만에 장편소설 ‘황금종이’를 출간한 소설가 조정래(81)는 “민족의 역사와 현실의 갈등을 기록했던 1, 2기를 떠나 인간의 실존과 현실,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탐구하는 3기(후반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1970년 등단해 단편과 중편을 발표한 1기를 거쳐 ‘대한민국 근현대 3부작’이라고 불리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2기 작품세계를 화려하게 마무리한 조정래의 마지막 주제는 ’돈‘이다.

오랜 구상 끝에 이번 소설을 완성했다는 조정래는 “가난했던 대학생 때부터 돈이라는 것을 생각했고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수없이 고민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평생에 걸쳐서 했고 그게 우리의 공통된 삶”이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재물욕이야말로 인간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라며 “자본주의가 이 세상의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돈은 더 막강해졌고 본능을 뛰어넘는 야수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돈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지배하는가, 또 인간은 어째서 돈에 그렇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를 소설로 쓰고자 했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황금종이‘라고 지은 소설의 제목과 관련 “’돈‘이라고 하면 너무 직설적이고 천박하잖아요. 그래서 문학적 상징과 은유를 전달하기 위해서 ’황금종이‘라고 붙였다”고 했다. “제 손자부터 주변 분들에게 그 뜻을 물어보니 거의 다 돈이라는 걸 맞추더군요. 그리고 작가의 말과 소설의 마지막 소제목을 통해서 독자들에게도 두 가지 퀴즈를 냈는데 아시겠지만 정답은 결국 ’돈‘입니다.”

주인공으로는 운동권 출신의 인권 변호사 이태하와 그 선배인 한지섭을 내세웠다. 소설은 돈으로 절박해진 의뢰인들이 이태하 변호사를 찾는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군부독재로부터 오늘의 민주화를 이룬 것은 운동권 출신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조 작가는 “지금은 여러 가지로 변질되고 문제가 많지만 그 정신을 최소한이나마 간직하는 것이 부를 이겨내는 인간으로서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 두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인물들은 특별한 모델은 없지만 흔히 운동권에서 보아왔던 어느 누구쯤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운동권이 그 초심을 지켰다면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세상이 됐을 것입니다. 제가 ’태백산맥‘을 쓰고 있을 때 응원해 주던 그 사람들에게 제가 거는 정치적 기대이기도 했는데 그렇게는 안됐죠. 결국 권력욕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 그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조 작가는 ’항정‘, 즉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무너져버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저 또한 작가로서 첫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그 마음을 평생 지켜왔다”며 “’태백산맥‘을 쓰면서 술을 끊었고 이후 20년을 술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기 떄문에 작가로서의 삶에 후회가 없습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을 펴내고 어느덧 등단 후 50년을 넘어선 조정래는 작가로서의 마지막을 준비 중이다. “’황금종이‘ 이후에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원의 문제에 대해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쓴 작품이 될 것 같다”며 6년 안에 마지막 작품을 출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조 작가는 “인생을 정리하면서 2가지 소망이 있다”며 “한 가지는 아내와 결혼 60주년을 건강하게 맞이해 회혼식을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등단 60주년에 마지막 작품집을 내면서 회문식을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세끼 밥 잘 먹고 산책을 열심히 하면 건강한 삶이 선물로 주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고 싶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저는 뼈끝까지 스며들어버린 우리 사회의 모순을 작가로서 최소한이나마 막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바라는 세상이 오지는 않겠죠. 그래도 노력하는 게 작가입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