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9)과 미 최장수 대통령 부부로 77년 4개월간 해로 했고, ‘공동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왕성한 퍼스트 레이디였던 로잘린 여사가 19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카터 센터는 치매 진단을 받은 로잘린 여사는 건강 악화로 호스피스 돌봄을 받은 지 이틀 만에 조지아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부인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로잘린은 내가 이룬 모든 성취의 동등한 파트너였다. 그녀가 세상에 있는 한 누군가 항상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로잘린 여사는 1927년 태어나면서부터 카터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간호사이자 로잘린 어머니와 친구 사이였던 카터의 모친이 로잘린이 태어날 때 산파를 맡은 것이다. 카터의 모친은 당시 3세이던 카터와 갓 태어난 로자린을 함께 돌봤다. 두 사람은 1946년 카터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강철 목련’으로 불린 로잘린 여사는 카터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카터 센터를 설립하고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 운동과 정신질환자 지원, 간병제도 강화 등 공익 활동을 펼쳤다. 로잘린 여사는 1994년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많았다. 당시 1차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해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하는 동안 로잘린 여사가 대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부는 퇴임 후에도 끈끈한 정을 유지했다. 90세이던 로잘린 여사가 2018년 결장 제거 수술을 받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은 병상에서 밤새 기도를 했다. 뜬눈으로 새벽을 맞은 그는 “로잘린이 무사하다”는 의사의 말에 손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남은 시간을 집에서 그녀와 함께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 후 5년여 만에 부인을 떠나보낸 카터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