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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규제’ 공감대에도 해법 제각각… 한국 “생산 감축엔 신중”

입력 | 2023-11-21 03:00:00

국제 플라스틱 협약 3차 회의
오염 종식 시기-재원 마련 등 이견… 산유국 등 비협조적 태도 보이기도
내년 부산 최종 회의 후 결론 날 듯
석유화학산업 4위 韓 신중한 접근… 환경단체 “정책 후퇴 우려스러워”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13일 케냐에서 개최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INC3)을 앞두고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촉구하는 ‘플라스틱 괴물’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활동가 옆에 있는 플라스틱 괴물 조형물은 귤밭에서 쓰인 타이벡(합성섬유의 종류), 버려진 커피 컵 뚜껑, 비닐봉지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뉴시스


19일(현지 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일주일간 열린 제3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가 끝났다. 내년 말까지 완성하기로 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60개국이 모인 세 번째 회의다.

지난해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84억 t에 이른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150만 t에서 2019년 4억6000만 t으로 늘어났다. 2060년엔 12억3000만 t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 초안은 플라스틱 감축 포함
세계 각국은 지난해 3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플라스틱과 관련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생기는 것으로, 영국 가디언지 등은 “2015년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한 ‘파리 기후협정’ 이후 가장 의미 있는 국제 환경협정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번 3차 정부 간 협상은 앞서 9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초안이 공개된 뒤 처음 열리는 회의다. 앞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차 정부 간 협상에서 각국은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방법을 두고 대립했다. ‘생산 자체를 줄이자’는 입장과 ‘재활용을 포함해 폐기물 처리에 중점을 두자’는 주장이 부딪친 것이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난 후 정제, 소각, 재활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다. 생산 자체를 제한하고 감축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실패작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9월 공개된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 및 사용 감축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 외 △재사용 시스템 활성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단계적 퇴출 △PVC와 유해 폴리머 등 화학물질 금지 등도 포함됐다.

13일 개막식에서 잉에르 아네르센 UNEP 사무총장은 “재활용이나 폐기물 관리만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다루기 어렵다”며 “플라스틱과 유해 화학물질을 더 적게 사용해야 하고, 생산부터 처리까지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에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종안이 아닌 만큼 이번 3차 정부 간 협상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두 차례 협상을 더 거쳐 생산량 감축량 목표와 규제, 모니터링 등 구현 수단을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치열하게 논의하게 된다.

● 3차 협상서 이견… 최종 회의는 내년 부산

20일 환경부, 외교부 등에 따르면 3차 정부 간 협상에서 대다수 국가들은 ‘해양 환경을 포함한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고,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초안의 목적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플라스틱 오염 종식의 목표 연도(2040년)를 설정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협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도 선진국은 지구환경기금(GEF)이나 세계은행(WB) 등 기존 기구를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플라스틱 오염 분담금을 신설하고 별도 기구를 세우자는 입장이다.

특히 현 상황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산유국과 석유화학이 발달한 나라들은 협약에 다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국가들은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 규제 내용을 초안에서 삭제하고, 폴리머를 비롯한 우려 화학물질과 제품에 대한 규제 대상 선정 방법과 기준도 협약에 포함하지 말자는 입장을 보였다. 폴리머 규제는 이를 찬성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국제적 목표’를 정할지, 각국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할지 의견이 갈렸다.

한국은 유럽연합(EU), 캐나다 등과 함께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플라스틱 생산에 독성 화학물질 사용 중단을 지지하는 ‘우호국 연합(High Ambition Coalition)’이지만 핵심 쟁점인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정부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플라스틱 협약 대응 방향에 대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산업 생산량이 세계 4위인 것을 고려해 신·재생산 감축 목표 설정 등 일률적인 규제 조항 신설에는 신중한 접근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4차 회의는 내년 4월 22∼30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최종 회의(5차)는 11월 25일∼12월 1일 부산에서 개최된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최근 환경부가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를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 단속을 유예하는 등 새로운 일회용품 관리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 “심지어 최종 회의 개최국인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제출한 INC 서면 의견서 등을 보면 재활용과 바이오플라스틱 등 궁극적 해결책이 아닌 방법에 치중돼 있어 우려스럽다”며 “플라스틱 생산량 절감, 재사용과 리필을 근본으로 하는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 한국 정부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전 세계가 함께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유통, 폐기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규제하자는 협약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