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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은택]또다시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얼고 있다

입력 | 2023-11-21 23:42:00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펴낸 ‘중대재해 사고백서―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35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중콘크리트(cold weather concrete) 시공 조건, 즉 양생(養生)이 어려운 5도 미만의 기온에서 골조 공사를 할 때는 콘크리트 품질관리가 필수다.’ 2022년 1월 11일 오후 3시 46분 무너진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의 사고를 분석한 기록이다. 당시 사람들은 생중계로 지켜봤다. 무너진 아파트 단면에 드러난 철근 가닥들과 콘크리트 더미, 그 위로 날리던 눈발.

백서는 기록했다.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강도를 확보하는 양생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지므로 충분한 양생 기간을 확보하며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더불어 영하의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콘크리트가 양생 중 얼어버리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추운 날씨 탓에 아직 굳지도 않은 콘크리트가 얼어버린 뒤, 기온이 올라가 녹는 현상을 ‘동결융해(凍結融解)’라고 한다. 콘크리트 속에 함유된 수분이 얼면 그 부피가 9%가량 팽창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콘크리트는 구멍 숭숭한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약해진다. 간단하지만 틀림없는 물리 법칙이다. 이 물리 법칙을 무시해서 현장 노동자 6명이 숨졌다. 그런데 물리 법칙을 어긴 사람과 그 결과로 숨진 사람은 동일인이 아니다. 이윤을 더 남기고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공기(工期)를 앞당기고 영하 날씨에도 콘크리트를 부어야 한다고 결정, 결재, 재촉한 사람은 사망자가 아니다.

백서는 적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그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신도 모르게 가해지는 위험을 모르고 불나방처럼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공기 단축 압박이 그러하다.’ 사건 현장 근로자들은 참사 이후 익명으로 언론에 말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타설하면 안 됐는데 했다.” “빨리 좀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백서에 빠진 것이 있다. 기록 어디에도 정부의 이야기가 없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저 모든 시스템의 붕괴는 건설 현장과 근로자의 안전을 관리하는 중앙정부와 관련 부처(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가 엄연히 존재하는, 그리고 관련 법 제도와 공무원, 사법행정 인력이 운용되고 있는 국가 테두리 안에서 벌어졌다.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현장 실태를 왜 몰랐고(혹은 알았다면 왜 방치했고), 왜 막지 못했는지. 정부는 자신의 잘못을 함께 기록해야 했다.

콘크리트가 물리의 법칙을 따른다면, 기업은 이윤 추구의 법칙을 따른다. 건설 근로자들은 오늘도 두 법칙 사이에 끼여 위태롭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싶다면 마땅히 물리 법칙이 이윤 추구 법칙보다 먼저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라고 국민은 정부에 법과 강제력을 부여했다.

올해 연말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11월 역대 최고기온을 돌파하더니 한파가 찾아오고, 날이 풀리더니 다시 영하권이다. 틀림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 전국 건설 현장 곳곳에 숨은 수분들이 팽창하며 얼고 녹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딘가에서 또 콘크리트가 얼고 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