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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의 슈퍼 엔저, 시장이 들썩… 엔화 예금에 10조원 넘게 몰렸다 ETF 수요도 폭발

입력 | 2023-11-23 03:00:00

日 ‘제로 금리’로 약세 지속 지난주 856원대까지 떨어져
작년보다 엔화 예금 72% 늘고 선물ETF에 419억원 유입
엔저 당분간 지속될 듯 전문가 “예측 불가, 투자 주의를”



게티이미지코리아


세계 3대 통화로 글로벌 시장에서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엔화의 가치가 3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며 ‘엔테크(엔화+재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기록적인 엔저에 엔테크족(族)이 몰려들면서 17일 기준 엔화 예금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72% 이상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공격적인 엔화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엔화 예금잔액 보름 만에 1조 넘게 늘어
올 초 100엔당 970원대에서 출발한 원-엔 재정 환율은 최근 860∼870원대로 내려온 상태다. 4월에는 1000원을 넘기기도 하는 등 상승세였지만 5월 이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달 16일에는 100엔당 856.8원으로 2008년 1월 이후 15년 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슈퍼 엔저’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일본 정부의 ‘제로 금리’ 정책의 영향이 크다. 특히 미국과의 금리 차이로 값싼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엔저를 더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종결했다는 기대감에 원화는 강세를 보인 반면 엔화는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지속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엔저 현상이 이어지며 은행권 엔화 예금에는 자금이 물밀 듯 유입되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7일 기준 엔화 예금잔액은 1조1753억 엔(10조2435억 원)으로 전달 말(1조487억 엔)에 비해 12.07% 늘었다. 약 보름 만에 1266억 엔(1조1034억 원)이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말(6832억 엔)에 비해서도 72.02% 늘어난 수치다.

일본 여행 수요가 급증하며 엔화 환전액도 크게 증가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5대 시중은행의 엔화 매도액은 약 3138억 엔(약 2조732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70억 엔)의 4배 수준이다. 은행이 원화를 받고 엔화를 내준 규모가 4배 늘었다는 얘기다.





예금통장에 ETF까지 엔화 투자에 몰려

엔저가 이어지면서 이를 활용하려는 투자도 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급격히 늘어난 엔화 예금 관련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KB국민은행은 환테크 전용 통장인 ‘바로보는 외화통장’의 가입 통화를 달러화에서 엔화·유로화까지 확대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엔저를 계기로 환테크에 대한 고객 수요가 늘어 가입 통화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Sh수협은행은 올 7월 가입 시 지정한 목표 환율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해지되는 ‘Sh 똑똑 환테크 외화 적립 예금’을 출시했다.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매월 최대 1만 달러까지 입금이 가능하며 최대 70%의 환율 우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엔화 예금의 경우 금리가 0%여서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다.

환차익과 더불어 투자 수익까지 노리는 이들은 상장지수펀드(ETF)를 주목할 만하다. 원-엔 환율을 기초로 엔 선물지수를 추종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엔선물 ETF’가 대표적이다. 해당 ETF는 엔화 가치 전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상 엔화를 직접 보유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이 이 상품을 419억 원 순매수했다. 다만 엔화 가치가 반등하지 않으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ETF에도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닛케이지수를 추종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니케이225’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일본반도체’ ETF는 이달 들어 20일까지 개인이 각각 6억5000만 원, 1억7000만 원가량을 사들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공격적인 엔화 투자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원-엔 환율은 100엔당 890∼970원 정도로 소폭 상승하겠지만 전반적인 엔저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며 “다만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공격적인 투자는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채란 하나은행 여의도골드클럽 PB부장은 “엔화는 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엔화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