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올 초 기자가 방문한 독일 한 기업의 사무실. 직원 대부분이 유연근로제를 이용해 일찍 퇴근하거나 재택 근로를 하고 있어 평일 오후임에도 사무실이 썰렁했다. / 프랑크푸르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팀원들 간에 회의하거나 업무를 교류해야 할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교집합인 ‘코어 시간(약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을 어느 정도 걸쳐야 하는 것 말고 다른 제약은 없었다. 누군가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주로 일찍 퇴근하다 보니 자연히 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직원은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더욱 놀랐다. 알고 보니 기자가 독일에서 보고 놀란 그 근로시간제도를 이미 많은 기업들이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T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한두 곳 그런 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보편적이었다. 매일 고정된 시각에 출근하고, 퇴근 시각을 내가 정할 수 없는 직장만 다녀온 기자에게는 그저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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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면서 아이 키울 수 있었다면…
‘아이를 키울 돈이 아니라 시간을 달라.’ 요즘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장시간 근로, 경직된 근로 형태가 일반화된 한국에서 아이 키우며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산휴가 뒤 바로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자동 육아휴직제’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다는 직장이 많다 보니 아예 육아휴직을 출산휴가처럼 의무화하도록 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엄마, 아빠 모두 육아휴직을 쓴 부부에 대해 현재 1년인 유급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늘려주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시행 예정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내기 쉬워진다니 바람직한 방향 같다. 하지만 과연 좋기만 할까?
기자는 네 아이를 낳고 총 네 번의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기간만 4년이다. 육아휴직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알기에, 기자는 큰 복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실제 덕분에 네 아이들을 잘 키웠고, 평생 못 잊을 많은 추억을 쌓았다.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도 휴직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육아가 좋았대도 경력 단절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내가 휴직하는 새 누군가는 좋은 기사를 쓰고 세상을 바꾸는 걸 보면서 울적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과 국내 IT 기업들의 근로 시스템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구나.’
● ‘육아기 단축 근로’ 이용, 육아휴직의 15% 수준
한국에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업주는 만 8세 혹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곧 12세 이하로 확대 예정)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때 근로 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다. 단축 기간은 1년으로 제한되지만, 만약 육아휴직 중 안 쓰고 남은 기간이 있다면 단축 근로기간에 가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초 발표한 2022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 수는 1만9466명이다. 같은 해 출생아 수가 24만9000명, 육아휴직자 수가 13만1087명임을 감안하면 육아휴직자의 15%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그나마 이용자의 90%(1만7465명)가 여성이었다. 육아휴직의 경우 그래도 남성 사용자가 30%에 가까운 점(3만7885명)을 감안하면 단축 근로 이용은 여성 편중이 심한 편이다.
왜 이런 수치가 나타날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었다. 교육 관련 회사에 다니는 한 지인은 “휴직하면 회사 사람들을 안 보지만, 단축 근로를 이용하면 매일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일하다 혼자만 일찍 퇴근해야 한다. 눈치 보여서 퇴근할 수 있겠느냐”며 “만약 꼭 써야 한다면 정말 불가피한 엄마들만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지인은 “우리나라 직장처럼 장시간 근로와 야근이 일상화된 곳에서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단축 근로가 구현되지 않을 듯해 결국 휴직을 택할 것 같다”고 했다. 쉽게 말해 대부분 직장에서 실질적인 단축 근로가 쉽지 않을 거라, 꼭 필요한 여성들만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냥 휴직해버리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말고도 시차출퇴근제, 근무시간 선택제와 같이 유연근무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독일과 한국 IT 기업들에서 구현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는 회사가 이런 근무제를 운용해야만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활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유연근로를 하고 있다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5.6%로 예닐곱 명 중 한 명꼴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려고 줄 선 시민들. 한국의 직장들은 출퇴근 시각이 대부분 고정돼있고 비슷하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 대중교통이 매우 붐빌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DB
● 육아휴직, 독박육아·경력단절 위험도
‘육아휴직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인데, 그냥 쉬면서 아이 키우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누군가 휴직해서 육아를 전담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가정 내 가사와 육아 분담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 누구든 휴직하면 육아는 독박으로 그의 차지가 된다. 복직 후에도 육아 주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휴직 후 몇 년 못 가 경력 단절로 빠지는 여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가 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반 학부모 모임이라는 걸 한다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두 가지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째, 모임에 참석한 학부모 중 아빠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과, 둘째 참석한 엄마 중 절반이 전업주부이거나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30, 40대 여성 고용률이 갈수록 오른다는데, 경력 단절 여성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니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녀가 태어났을 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비취업 기혼여성 2명 중 1명이 경력 단절 여성이었고, 사유는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 등 자녀 관련이 70% 이상이었다.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건 육아 친화적인 근무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근로 현장에서 어린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배제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아야 육아 친화적인 문화도 빨리 도입될 터다. 기업 입장에서도 휴직자가 느는 것보다는 기존 경력 직원이 계속 회사에 남아 일을 해주는 게 이득일 수 있다.
● 휴직해야만 육아 vs 일하면서도 육아…뭐가 더 낫나
이미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거나 열악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한다. 올 초 취재차 유럽의 고용노동부 장관 격인 니콜라스 슈미트 EU 일자리·사회권 집행위원을 만났을 때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는 “한국도 유럽만큼 (모성보호제도가) 잘 되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떼파파’의 국가, 보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육아휴직이 16개월이다. 한국도 출산휴가에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합치면 15개월이다. 육아휴직급여의 경우 스웨덴은 급여의 80%, 한국은 통상임금의 80%다. 물론 한국에서는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낮고, 여전히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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