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정치부 차장
“일본에선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한일 관계가 다시 나빠질 거란 불안감이 있습니다.”
최근 만난 일본 정부 인사와 언론사 간부의 얘기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말을 했다.
이런 불안감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당장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다소 선동적인 반일 외교로 우리 국민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을 두고 현 여권에선 ‘반일 죽창가 선동질’이란 극단적 수식어까지 붙였다.
이런 한일 화해협력 무드의 시작점은 3월 우리 정부가 내놓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였다. 정부 산하 재단이 한일 기업으로부터 기여금을 받아 피해자에게 우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우리 정부가 제시했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자 다른 양국 이슈들도 풀어갈 계기가 마련됐다. 해법 발표 후 강제징용 피해자 15명 중 11명은 판결금을 수령했다. 한일 관계는 외교·안보·경제 등 분야마다 해빙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강제징용은 여전한 현안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앞서 7월 재단은 판결금을 수령하지 않은 피해자 4명에 대해 공탁하려 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제3자 변제안을 반대한다”는 취지로 공탁관이 반대해서다.
더 근본적인 불안 요소는 일본의 태도다. 앞서 강제징용 해법 발표 당시 정부는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나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가 먼저 잔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머지않아 채워줄 것으로 봤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명문화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배상 측면에선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재단에 돈을 내놓기 어렵다면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라도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 이 기금의 출연 액수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이게 최소한의 성의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이 불안하다면 한국은 불만스럽다. ‘한국 정권 교체 리스크’가 불안하다면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이란 걸 일본 정부는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