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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공 2만채 짓겠다더니… 3년 넘게 착공물량 ‘0’

입력 | 2023-11-24 03:00:00

[표류하는 서울 도심 주택공급] 〈상〉 공공주택 개발 지지부진




서울 강남권과 여의도 마포 등에서 공공기관이나 군(軍)이 보유한 도심 핵심 택지에 주택 2만여 채를 짓겠다던 정부의 공급 계획이 3년 넘게 표류하면서 단 1채도 착공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2020년 8·4공급대책에서 서울 도심 곳곳의 공공택지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미니 신도시급’ 물량 2만1700채가 사실상 무산되며 향후 2, 3년 내 도심 주택 수급 불안이 더 커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옛 서울의료원 북측 땅에 외국인 대상 관광숙박시설인 레지던스를 550실 규모로 짓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국토부가 8·4대책 당시 주택 3000채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곳으로, 영동대로 복합개발 등도 이뤄져 관심이 컸다.

하지만 강남구가 잠실 마이스(MICE) 산업단지 등의 연계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며 주택 개발을 반대해 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제 업무 기능이 있는 지역인 만큼 관광,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이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레지던스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8·4대책 때 발표된 도심 공공택지들은 윤석열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계획에도 반영됐는데, 결국 개발이 무산되면 도심 공급 물량이 더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지방조달청과 서초동 국립외교원 땅에도 주택을 각각 1000채, 600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서초구가 반대하며 아직 진척이 없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급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수요가 높은 서울 도심 공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설익은 정책을 발표부터 하면 정책 신뢰도만 떨어진다”고 말했다.




주민-구청 반대에… 태릉골프장 1만채-반포 1000채 좌초 위기
용산 캠프킴-서부면허시험장 부지 등 2만여채 공급계획 중단-지연
LH조차 주민 반발에 부딪혀… 여의도 보유 땅에 임대주택 포기
“정부 땜질식 공급대책, 표류 자초”

정부가 2020년 8·4 공급대책을 통해 주택 1만 채를 짓기로 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 당시 물량이 가장 많이 나오는 택지로 관심을 모았지만 3년이 넘은 현재까지 아무런 개발계획도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 이는 주민 반발이 거센 영향이 크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경우 인근에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강릉 경관이 훼손되고 거주 인구 증가로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는 이유다. 토지주인 국방부까지도 주택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 밀려 정부는 2021년 공급 계획을 기존 1만 채에서 6800채로 줄였지만 그마저도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발표한 공공주택 공급물량에 여전히 포함돼 있다. 공급될지 알 수 없는 ‘허수’가 계획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서울 도심이야말로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이 같은 ‘공염불 계획’이 잇따르면서 주택 공급 전망이 불확실해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주민·지자체 반대에 사업 무산·지연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4 공급대책 당시 정부는 도심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신규 공공택지에 3만3000채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상당수가 좌초되고 있다. 공릉동 태릉골프장(1만 채)을 비롯해 △경기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일대(4000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3500채)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캠프킴 부지(3100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미매각부지(2000채) 등이다.

이들 용지 가운데 강남권과 여의도 등 ‘금싸라기 땅’의 경우 공공기관이 보유한 땅인데도 주민 반대나 지자체 협의 난항 등으로 아예 공공주택 개발이 막힌 곳이 적지 않다.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조차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H가 보유한 토지에 300채 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려 했지만, 공급 계획을 포기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금융특구를 조성해야 한다며 주택 개발 반대 현수막이 걸리고 반대 서명 운동이 벌어져 LH는 해당 용지를 민간에 매각하기로 했다.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 땅에 200채 규모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했던 사업도 비슷하다. 강남구청역에서 도보 5분 거리 ‘금싸라기’ 땅이지만 빌라 밀집지라 아파트를 지을 경우 일조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아직 아무런 개발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주민 민원 탓에 개발을 꺼리는 것”이라며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물량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발표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조달청 부지나 서초구 서초동 국립외교원 부지 역시 강남권에서 드물게 공급되는 물량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구청과 지역주민 반대 여론이 거센 상황. 현재까지도 관련 기관 간 공식 협의조차 이뤄지지 못하면서 공급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단체장이 나서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서부면허시험장, DMC 매각부지 등 대규모 택지가 포함된 마포구에서는 아예 구청장이 택지 발표 직후 단식투쟁에 나섰다. 결국 면허시험장은 다른 용도로 개발을 검토 중이고, DMC 매각부지의 경우 상업·업무시설 개발을 목적으로 용지 매각이 진행 중이다.



● “땜질식 발표, ‘쇼’로 끝나지 않도록 재검토해야”


도심지 주택 공급 대책이 차질을 빚는 이유는 공급대책이 공공 간 면밀한 정책 공조 없이 땜질식으로 발표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자체가 이미 자체적인 도시개발계획을 세워둔 상태에서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공급 계획을 발표해 사업 표류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이 지연·중단된 경우 최대한 대체할 땅을 발굴하고 있다”며 “공급 물량을 임대 대신 분양으로 전환하거나 지자체가 원하는 생활기반시설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협의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책 발표가 일종의 ‘쇼’로 끝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택 공급을 예측 가능하도록 계획을 짜야 하는데 정부가 허수를 포함한 계획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기존 계획을 살펴 도심 공급 현황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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