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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인아]이맘때, 리더의 질문

입력 | 2023-11-24 23:45:00

리더가 직원을 잘 알아야 고과 정확해지고
판단하고, 책임질 때 후배들의 믿음도 커져
‘구성원이 값진 시간 보내고 있나’ 자문해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고 결과를 통보받았다. 건강 상태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혈액 검사 결과부터 복부 초음파, 경동맥, 위내시경, 골밀도 등 많은 지표들의 의미를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들었다.

작년과 비교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중요한 수치 몇몇은 꽤 나빠졌다, 아직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고 나는 더 알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찬찬히 설명해 주었고 나는 납득했다. 앞으로의 건강은 나의 꾸준한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오는데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이맘때면 진행되던 고과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인사철이고 고과철이다.

많은 기업들이 다면평가를 도입하고 있지만 고과는 조직을 책임진 리더가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상대 평가 방식이라면 어차피 누군가는 A를 받고 누군가는 C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등급을 정하는 것으로 고과 작업을 끝내고 말면 가성비가 떨어진다. 리더는 평가 등급을 할당하는 것 외에, 일을 맡긴 사람으로서 구성원들에게 그간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정확한 피드백을 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한데, 이렇게 하려면 리더가 직원에 대해 꽤 알고 있어야 한다. 일의 결과뿐 아니라 지난 일 년 동안 그 직원이 일하는 걸 쭉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그가 무얼 어떻게 얼마나 했고 조직의 성과나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또 어떤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고 어떤 면에선 미흡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것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시간을 함께 일하며 눈 밝게 지켜본 자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고과를 매기는 리더도 준비해야 하는 거다. 그래야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한 번 잘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잘할 수 있고 좋지 않은 고과를 받은 사람도 수긍하고 다시 애써볼 동기를 가질 수 있다. 등급만 알려주고 말 게 아니라는 거다.

고과와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클라이언트 중의 한 기업은 광고를 새로 제작하면 꼭 사전 소비자 조사를 해서 기준 점수를 넘어야 매체에 집행을 했다. 그런데 꽤 잘 만든 광고였음에도 기준에 0.1점이 못 미쳤다. 다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면서도 꽤 잘된 광고이고 겨우 0.1점이 모자랄 뿐이니 집행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클라이언트의 책임자는 집행 불가, 기준대로 한다고 통보해 왔다. 그런데 얼마 후 반전이 일어났다. 데이터 처리에 착오가 생겨서 점수 집계가 잘못됐다는 거다. 사실은, 집행하고도 남는 점수였던 거다. 부랴부랴 새로운 걸 준비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고 경쟁사의 적극적인 마케팅 앞에서 역부족이었다.

리더가 구성원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그 자리에 있는 건 왜일까? 리더의 역할 중 상당수는 책임지는 거다. 책임이란 달리 말하면 무릅쓰는 것이다. 어렵지만, 불확실하지만, 잘못될 수도 있지만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러곤 감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쳐다보는 많은 이들이 믿고 계속해서 애를 쓰도록, 또 저 리더와 함께하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리더도 숫자에, 데이터에 의거한다. 그러나 리더가 들여다봐야 할 기준이 숫자 하나는 아니다. 타이밍, 경쟁 관계, 구성원의 사기, 일의 선후, 조직의 비전…. 고차방정식이다. 하지만 그때 그 리더는 판단하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았으며 책임지지 않았다. 인공지능(AI)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AI로 대체할 수 없고 넘겨주어서도 안 되는 일이 바로 리더의 결정이고 책임 아닐까?

요즘 내가 하는 강연 주제 중에 ‘리더십, 소통’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강연장의 리더들에게 ‘리더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내 생각 하나를 말한다. 일터에서 우리는 리더와 구성원으로, 혹은 선배, 후배로 만나 함께 일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한 시간을 그렇게 함께하는 거다. 그렇다면 리더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귀한 시절을 나와 함께 일하며 보내는 후배, 구성원들이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나? 그들이 그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나는 리더로서 무얼 하고 있고 해야 하나?’ 어차피 조직이란 사람이므로 리더의 질문은 사람을 향할 수밖에 없고 성과 또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이런 질문으로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계획해 보시면 어떨까?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