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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언부터 SNS 게시글까지…‘진실’→‘새빨간 거짓’ 6등급 판정

입력 | 2023-11-25 01:40:00

[위클리 리포트] 팩트체크 전문기관 美 ‘폴리티팩트’에 가다
정치인 발언 해부해 ‘거짓’ 가려… 대선 1년 전부터 팀 꾸려 팩트체크
페이스북서도 ‘거짓’ 게시물 표기… 자료-취재원을 기사 하단에 명시
정보의 신뢰도-투명성 높이고… 오류 확인하면 수정 사유 공개




《美 팩트체크 전문기관 가보니 전 세계적으로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인공지능(AI)도 진짜 같은 가짜를 생산하는 데 악용된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에 허위 정보를 가려낼 수 없을까. 미국 팩트체크 전문기관 ‘폴리티팩트’에서 답을 찾아봤다.》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팩트체크 기관 폴리티팩트의 존 그린버그 선임기자가 팩트체크의 방법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워싱턴=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9·11테러 다음 날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며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공군기지에서 9·11테러 22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연설한 내용 중 일부다.

미 팩트체크 전문기관 폴리티팩트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 발언을 ‘FALSE(거짓)’로 판단했다. ‘다음 날’이라는 팩트가 거짓이라는 이유에서다. 폴리티팩트는 어떻게 이를 밝혀냈을까.

폴리티팩트 기자들은 2001년 9월 12일 미 상원 회의록 전문을 찾았다.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이 워싱턴 국회의사당 상원 회의에 참석해 있던 사실이 확인됐다. 9·11기념관의 타임라인을 살폈더니 테러 9일 후인 9월 20일 바이든 상원의원이 사건 현장에서 찍힌 영상과 사진들이 발견됐다. 폴리티팩트는 마지막으로 백악관에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은 당시 테러 9일 후 현장에 있던 것이 맞다”고 인정하는 성명을 냈다.

폴리티팩트는 취재 내용을 자사 웹사이트 ‘조 바이든’ 팩트체크 난에 올렸다. 발언의 거짓 판정 이유와 취재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취재원과 취재 자료 링크도 모두 기사 하단에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허위 정보들이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팬데믹 등의 상황에서는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의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교묘히 허위 정보를 퍼뜨려 자신의 이득을 쟁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마저 진짜 같은 허위 정보를 생산하는 데 악용되곤 한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점점 어려워진 시대에 허위 정보들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는 없을까. 지난달 25∼27일 워싱턴의 폴리티팩트 본부를 직접 방문해 그 해답을 찾아봤다.

● 6단계 등급으로 진실 여부 판정

폴리티팩트는 미 최초이자 3대 팩트체크 전문기관으로 꼽힌다. 팩트체크를 활성화한 공로로 2009년 웹사이트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폴리티팩트는 주로 정치인 발언의 진실 여부를 취재해 판정을 내린다. 허위 정보나 딥페이크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소셜미디어 게시글과 사진, 동영상도 주요한 체크 대상이 됐다.

폴리티팩트의 시작은 2007년이다. 미 대선을 1년가량 앞두고 당시 탬파베이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이던 빌 어데어 듀크대 교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백악관 출입기자로서 정치인 발언의 진실 여부보다 말 자체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폴리티팩트 창립 멤버이자 편집장을 지낸 앤지 홀런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 디렉터는 “대중도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등 대선 후보의 선거 홍보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다”며 “홍보 문구가 진실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팩트체크를 시작했다”고 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해 6단계로 등급을 매긴 ‘진실판정기(Truth-O-Meter)’. ‘진실’, ‘대체로 진실’, ‘반만 진실’, ‘대체로 거짓’, ‘거짓’, ‘새빨간 거짓’으로 나눠져 있다. 

폴리티팩트는 진실과 거짓을 6단계 등급으로 나눈다. 진실, 대체로 진실, 반만 진실, 대체로 거짓, 거짓, 새빨간 거짓 중 하나로 판정을 내린다. 이를 ‘진실판정기(Truth-O-Meter)’라 부른다. 독자들이 팩트체크 기사에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장치인 셈이다. 진실 판정은 취재기자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일명 ‘체임버 프로세스’라는 과정을 거친다. 법원 배심원제처럼 에디터 3명이 취재기자와 함께 치열한 토론을 거친 뒤 에디터 3명 중 2명 이상 동의해야 확정된다.

폴리티팩트는 명확한 취재 원칙을 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해 둔다.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취재 대상의 투명성이다. 취재기자는 취재에 활용한 원자료와 취재원 내역을 모두 기사 아래 빼곡히 기재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취재했는지 독자에게 정보를 모두 제공해 신뢰성을 높인다. 발화자에게는 발언의 진위를 직접 물어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전문가들도 특정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복수의 취재원을 인터뷰한다.

폴리티팩트라고 해서 오류가 ‘제로’일 수는 없다. 폴리티팩트의 기본 전제는 ‘실수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실수를 인정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오류를 수정한 뒤, 수정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재취재 결과에 따라 진실 판정 등급도 수정될 수 있다. 수정 기사에는 변경 날짜와 사유를 명확히 밝힌다.

● ‘새빨간 거짓’ 비율, 트럼프 18% vs 바이든 2%

워싱턴에 본사를 둔 폴리티팩트가 가장 바쁠 때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쏟아지는 대선 전이다. 미 대선이 아직 1년 남았지만 폴리티팩트는 이미 선거취재팀을 꾸리고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주요 후보에 대한 팩트체크에 돌입했다. 케이티 샌더스 폴리티팩트 에디터는 “3월부터 후보자들의 주요 연설 스크립트와 방송,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에서 자주 사용한 주장들을 추적 중”이라며 “지난달까지 공화당 후보에 대한 팩트체크는 75번, 바이든 대통령은 35번 진행됐다”고 밝혔다.

폴리티팩트는 웹페이지에 주요 인물별 진실 판정 비율을 상세히 분석해 두고 있다. 23일 기준 바이든 대통령은 진실 8%, 대체로 진실 24%, 반만 진실 24%, 대체로 거짓 19%, 거짓 20%, 새빨간 거짓 2%로 집계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진실 3%, 대체로 진실 8%, 반만 진실 12%, 대체로 거짓 19%, 거짓 37%, 새빨간 거짓 18%로 나타났다.

존 그린버그 폴리티팩트 선임기자는 정치인들의 발언에 ‘절대’, ‘무조건’, ‘최초로’, ‘언제나’ 등 단언적인 수사가 있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한 예시로 들고 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 장벽을 세워 국경 일대의 범죄율이 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거짓’으로 판정됐다. 얼핏 듣기엔 장벽을 세운 덕분에 범죄율이 감소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린버그 선임기자는 “통계를 보면 장벽이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범죄율이 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었다”며 “정치인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통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쪽 세력이 치열하게 맞붙는 대선에서는 어느 때보다 팩트체크의 중립성이 중요하다. 폴리티팩트는 비영리단체인 포인터연구소 소유로 정파성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홀런 디렉터는 “선거 결과와 정치적 관점을 우리가 정할 수는 없다. 대중에게 최고의 진실을 제공해 올바른 결정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팩트체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팩트체크 그 자체로 정치인이 정확한 사실을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감시 효과’를 가져온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 허위 정보 시 페이스북 게시글에 ‘거짓’ 표기

폴리티팩트가 ‘거짓’으로 판정한 영상 자리에 ‘거짓 정보. 독립적인 팩트체크 기관에서 확인됐습니다’란 문구가 노출돼 있다. 폴리티팩트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와 협업해 허위 정보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정치인들의 발언과 함께 폴리티팩트가 인력을 가장 집중 투입하는 분야는 소셜미디어다. 별다른 검증 없이 쉽게 게시물을 올릴 수 있고 공유 속도가 빠른 만큼 허위 정보에 대중이 쉽게 노출될 수 있어서다. AI 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와 음성변조 영상들이 등장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허위 정보를 구별하는 것은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

주요 팩트체크 대상은 허위 정보로 의심되면서 조회수가 높고, 확산 속도가 빠른 게시물이다. 정확한 출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도 취재 대상이 된다. 레베카 카탈라넬로 폴리티팩트 기자는 “소셜미디어 전문 취재 인력이 평균 3일에 걸쳐 사실 확인을 한다”며 “인기 있는 영상은 확산 속도가 빨라 가급적 당일 팩트를 체크해 확산을 멈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페이스북에는 “팔레스타인 자유대원들이 이스라엘 전투기 4대를 격추했다”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50곳 이상 영상이 공유됐고 180여 개 댓글이 달렸다. 폴리티팩트 취재 결과 이 영상은 한 비디오 게임에서 가져온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확인됐다.

이후 해당 게시물에는 ‘팩트체크 기관에서 확인한 거짓 정보’라는 문구가 떴다. 게시물 하단 링크를 통해 폴리티팩트 팩트체크 결과도 읽을 수 있다. 이후 버튼을 추가로 클릭해야만 해당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해당 영상이 허위 정보로 밝혀졌다는 걸 알고 나서야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폴리티팩트가 페이스북, 틱톡 등과 협업을 통해 허위 정보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그린버그 선임기자는 ‘팩트체크 멘털리티’를 수차례 강조했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든 진실을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에게 팩트체크가 시민에게 미치는 효과가 정말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스(네)”였다.

“많은 시민들이 정부나 정치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SNU팩트체크센터, 포인터연구소가 공동 진행한 팩트체크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워싱턴=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