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의 매물로 나온 한 아파트를 소개하는 크리스틴 파파도풀로스 씨.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집을 내놓은 지 한 달 반이 됐는데 찾는 사람이 없네요.”
10일 프랑스 파리 패션중심지인 마레지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집주인 크리스틴 파파도풀로스 씨는 “사람들이 집 사는 걸 망설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인중개업소 센츄리21 알파마레 지점장이기도 한 파파도풀로스 씨는 “금리가 오르면서 빚을 못 갚는 대출자가 늘까봐 은행이 대출 문턱을 엄청 높이고 있다”며 “집 사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이날 그의 공인중개업소 앞에는 매물 10여 건 광고가 줄줄이 내걸려 있었다.
내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주택 매매 붐을 기대하던 프랑스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식고 있다. 최근 1년 3개월 만에 금리가 3배나 뛰어 4%대를 기록해 소비자는 주택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자는 “무주택자는 이제 아예 발길이 끊겼다”고도 했다. 유럽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럽 20개국 평균 집값은 9년 만에 처음 하락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집값은 더 내려가고 유럽 주택 시장 침체가 세계 경기 회복을 더 늦출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獨 전체 건설사 22% “사업 취소”
유럽 주택 시장은 지난해까지 사실상 제로(0) 금리에서 최근 4% 넘게 급등하며 전반적으로 하락세다. 유럽연합(EU) 통계 기관 유로스타트가 지난달 발표한 올 2분기(4~6월)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EU 20개국 평균 집값이 전년 동기 대비 1.7% 하락했다. 집값 하락은 2014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독일(―9.9%) 덴마크(―7.6%) 스웨덴(―6.8%)의 하락 폭이 컸다. 특히 독일에서는 지난달 주택건설업체 22.2%가 진행 중인 사업을 취소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1991년 이후 32년 만에 최고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에 육박한 영국에서는 이미 올 7월 집값이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인 전년 동월 대비 3.8% 하락했다. 영국에서도 대출 비용이 불어나 무주택자가 집을 살 엄두를 못 낸다. 로버트 가트너 네이션와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주택 구매자금의 20%를 예금으로 쓰는 생애 첫 주택 구입자는 현 금리 수준에서 구입비 43%를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며 “1년 전엔 32%였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도 올해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수가 4년 전의 4분의 1로 줄었다고 일간 르몽드가 전했다.
● “세제-행정 개혁해야 시장 회복”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의 자가를 매물로 소개하는 베르나르 르브르통 씨.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유럽 주택시장이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낙관론이 없지는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7월부터 올 9월까지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다가 지난달 4.5%에서 동결해 ‘금리 정점이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ECB가 물가와의 전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추가 금리 인상을 배제할 수 없다.
주택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주택 보유자들은 복잡한 세제와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파리 마레지구에서 또 다른 집을 보여주던 다주택자 베르나르 르브르통 씨는 “정부가 재산세 같은 바보 같은 세금을 개혁하고 집 살 때마다 서류를 100쪽가량 채워야 하는 행정 절차를 바꿔야 매도세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이 같은 집주인들의 불만을 의식해 최근 세제를 개편했다. 덴마크 인터넷 매체 더로컬에 따르면 당국은 내년부터 재산세를 산정하는 부동산 가치 평가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부 주택 보유자는 역대 최대 재산세 감면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