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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왜 ‘포퓰리즘’에 빠졌는가[김상운의 빽투더퓨처]

입력 | 2023-11-27 11:00:00

[11]포퓰리즘의 역사




팬데믹에 이어 전쟁과 경제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반(反)이민정책과 동맹 파괴에 나선 트럼프가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에서도 반이민정책을 내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중앙은행 폐쇄, 장기매매 허용 등의 과격한 공약을 내건 하비에르 밀레이가 승리했습니다. 각종 보조금을 남발해 140%에 달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낳은 페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 우파 포퓰리즘 정권을 낳았다는 분석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한국도 ‘메가 서울’ ‘은행 횡재세 도입’ ‘공매도 금지’ ‘대구-광주 고속철도 건설’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들에서도 포퓰리즘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무얼까요. 과연 일각의 지적처럼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는 걸까요. 수천년을 아우르는 포퓰리즘의 역사를 통해 그 실체와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등 국내외 주요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2400년 전 고대 그리스 포퓰리즘과 닮은꼴

지난해 3월 열린 대선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 공약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채널A 화면 캡처

라틴어 ‘populus(민중)’를 어원으로 하는 포퓰리즘(populism)의 사전적 의미는 대중에 영합해 정책을 펴고 권력을 강화하는 행태를 말합니다.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는 포퓰리즘을 “국민이 직접 통치하는 민주주의 최고 이상을 실현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타락한’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정의합니다. 또 “포퓰리스트들은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부도덕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는 거칠고 태도는 무례하며 반대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고 합니다.

포퓰리스트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포퓰리스트 대신 ‘데마고고스(demagogos)’라고 불렸죠. 이 말은 민중을 뜻하는 ‘dema’와 지도자를 가리키는 ‘agogos’가 합쳐져 ‘민중 지도자’를 의미했습니다. 원래는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가’라는 중립적 의미였는데 페리클레스 사후 정치 혼란을 겪으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정치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되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마고고스를 이상적인 민주 정치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 ‘정치학’에서 “민중이 법 위에 군림하는 민주정체에서는 데마고고스가 부자들과 전쟁을 벌여 나라를 늘 둘로 나눈다”면서 이들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민중들에게 생산잉여를 분배하는 ‘무절제(aselgeia)’에 빠진다고 했죠. 현대의 ‘복지 포퓰리즘’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도시국가(폴리스) 아테네에서 본격적인 데마고고스의 시대를 연 정치가는 클레온(?~기원전 422년) 입니다. 피혁업자 가문 출신으로 귀족이 아니었던 그는 페리클레스 사후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권력자로 부상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예의를 중시한 기존의 명문귀족 출신 정치가들과는 달리 “겉옷을 걷어부치고 고함을 지르며 허벅다리를 철썩철썩 때리면서 상소리로 연설하는” 다소 공격적인 성향의 지도자였죠. 공격적인 언사로 상대를 당황케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고대 그리스의 세력 관계도. 붉은 색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 파란색이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회색은 중립 도시국가다. 나무위키 제공

평민 출신 정치지도자의 혜성 같은 등장을 이해하려면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페리클레스 치세 하에 아테네는 압도적 해군력을 바탕으로 주변 도시국가들을 복속하며 제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함의 노를 젓는 등 많은 노동력을 제공한 평민들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진 것도 데모고고스 등장의 배경이 됩니다.

당시 아테네는 라이벌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에 맞서 전쟁(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숱한 안보위기를 맞습니다. 스파르타의 공격을 틈타 아테네에 칼을 들이대는 동맹들이 생긴 겁니다. 전쟁으로 인해 해외로부터 식량공급이 어려워지는 등 경제난에도 봉착합니다. 여기에 기원전 430년과 426년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아테네 총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하는 재난까지 덮치죠.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고금리, 고물가의 경제난에 직면한 요즘 각국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런 다중 위기를 맞아 클레온은 전임자인 페리클레스의 정책을 비판하며 공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으로 민중의 지지를 얻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원전 427년 뮈틸레네 반란에 대한 그의 강경한 주장입니다. “예속국들의 복종은 아테네의 양보가 아닌 ‘힘’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라는 클레온의 강경론에 아테네 민회는 뮈틸레네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성과 어린이를 노예로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때 디오도토스가 “예속국에 대한 초강경 처벌은 오히려 아테네의 이익에 반한다”며 반론을 제기하죠. 향후 반란을 일으키는 동맹국들이 뮈틸레네의 전례를 보고 결사항전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따라 반란에 책임이 있는 이들만 처형하는 것으로 민회 결정이 번복됩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민회의 뮈틸레네 처벌 논의를 다루면서 “클레온이 아테네에서 가장 ‘폭력적’이었고 당시 민중들에게 가장 설득력이 강했다”는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이때 그가 쓴 단어 ‘Beacóratos(폭력적)’는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 휼륭한 정치가의 속성과는 거리가 먼 부정적인 뜻을 내포했죠.

민중들에게 설득력이 가장 강했다는 투키디데스의 말대로 비록 뮈틸레네 처벌이 관련자(1000명) 처형으로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클레온의 강경론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기원전 423년 스키오네에서 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테네는 결국 스키오네 시민 전체를 도륙하고 도시를 통째로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같은 클레온의 강경 외교는 결국 아테네에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하다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겁니다. “일인자가 되려는 열망 때문에 도시의 사안을 민중의 즐거움에 맡긴 지도자”라고 투키디데스가 클레온을 비판한 이유입니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차이

열정적인 연설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 민족 정체성을 앞세운 우파 포퓰리즘은 파시즘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나무위키

사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모두 ‘민중(demos)’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반(反)엘리트주의와 이분법 ▲반의회주의 ▲카리스마 지도자에 대한 의존 ▲단순화를 통한 선동 ▲대중매체의 효율적 이용 등을 포퓰리스트의 특징으로 꼽습니다. 다시 말해 부패한 엘리트와 선량한 인민의 대립 구도를 가지고 의회를 우회해 대중을 직접 동원하는 행태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나 법치주의의 기본원리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하죠.

적과 우리를 구분하는 이분법의 논리는 요즘 국내 정치에서도 종종 목격됩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 친일 프레임을 동원해 야당을 ‘토착 왜구’로 몰아붙이거나, 윤석열 정부에서 여당이 반공주의를 소환해 야당을 ‘주사파 용공세력’으로 규정했죠.

포퓰리스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 포퓰리즘으로 구분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파 포퓰리즘은 민족이나 문화 정체성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행태로 히틀러와 트럼프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부흥이라는 미명 하에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습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가치를 내세워 백인 블루칼라를 동원하기 위해 이민자 혐오를 이용했죠.

이에 비해 좌파 포퓰리즘은 계급 정체성을 중심으로 극단적 평등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각종 보조금을 쏟아내 국가부채를 급증시킨 20세기 남미의 페론주의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추진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히틀러를 봐도 알 수 있듯 카리스마를 갖고 민중을 동원하는 지도자에게 국가사회가 좌우되는 상황은 결국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작은 민중이지만 그 끝은 전체주의 독재로 나아가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 발생의 원인

내년 대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일 선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앞서 아테네가 포퓰리즘에 빠져든 배경에서 알 수 있듯 현대에서도 빈곤은 포퓰리즘 발생의 요인입니다. 히틀러는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당시 독일인들에게 독일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허상을 제시해 권력을 잡았죠.

예속국에 대한 클레온의 강경론에 아테네 시민들이 넘어간 것도 예속국에서 거둬들이는 공납금이 늘어야 퍼주기식 복지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클레온은 노령층 평민들의 생활비로 요긴하게 쓰인 배심원 수당을 하루 2오볼로스에서 3오볼로스로 인상해 지지를 얻었습니다(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 등 동맹국을 쥐어짠 트럼프의 외교가 연상됩니다)

주요 이슈에 대해 당파적 갈등이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도 포퓰리즘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합니다. 앞서 언급한 포퓰리스트의 이분법 선호가 정치 양극화와 맞물리기 때문이죠. 이것이 기존 제도권 정치의 무능과 결합되면 폭발력은 매우 커집니다. 재벌 유착 등 박근혜 정부의 부패상이 진영 갈등과 맞물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무후무한 빅뱅으로 이어진 게 한 예일 겁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한국 정치 양극화, 원인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양극화 지수(0~1 사이로 1에 가까울수록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적대적)는 권위주의 시대에 0.75로 높았으나 1987년 민주화 이후 0.5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이후 양극화 지수가 0.75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탄핵정국을 거친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통과하면서 정치 양극화가 이전 권위주의 시대와 같은 수준으로 높아진 겁니다.

실제 정치 현장을 살펴보면 이 같은 추세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의 해외시찰을 여야 의원들이 따로 가는 행태가 21대 국회 들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정상 운영위원회 정도만 그런 행태를 보였지만 이제는 다른 일반 상임위도 여야 ‘따로 국밥’으로 해외시찰을 다닌다는 겁니다.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 시찰은 국비 지원을 받아 국회 공무원까지 동원되는 공적인 업무”라며 “정당끼리 따로 갈거면 당비를 써야지 국비를 받고도 저런 행태를 보이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2020년 21대 총선 직후 윤호중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 “타당 출신 보좌진 임용시 업무능력 외에 정체성 및 해당 행위 전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과거에는 능력있는 보좌진을 채용하기 위해 상대 정당에서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보좌진 채용마저 피아를 식별하는 이분법 구도에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집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8월 당대표 취임 이후 영수회담을 8번 요청했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여야 대표 회동이 먼저’라는 등의 논리로 이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여야의 강성 지지층이 각각 시위를 벌이는 모습. 강성 지지층에 정당이 포획된 구조는 정치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동아일보DB

그렇다면 한국 정치에서 이처럼 양극화가 심화되는 원인은 무얼까요. 한국 정치의 양극화는 식민경험, 분단 체제, 군사독재라는 특수한 역사경험에서 연유하는 바가 크지만 승자독식의 정치 제도에도 원인이 있다는 게 학계 시각입니다. 득표율이 의석 수에 비례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현행 선거제도가 양당 제도를 고착화하면서 정치 양극화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예컨대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동원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49.9%, 미래통합당은 41.5%를 지역구에서 득표했지만 의석 수는 각각 163석과 84석으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제3당이 들어서기가 힘들어 양당정치의 파당적 폐해를 견제하기 힘들죠.

이른바 ‘개딸’이나 ‘태극기 부대’ 같은 강성 지지층에 양대 정당이 포획된 구조도 양극화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공직자 선거에서 당내 경선이 확대되면서 강성 지지층의 당원 투표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표를 얻어야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결국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꾸고,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지 않는 정당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포퓰리즘의 기반이 되는 정치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민을 선동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포퓰리스트의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참고 문헌]
-권혁용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 (한국정치학회보 57집 1호, 2023년 봄)
-장시은 <뮈틸레네 논전에 나타난 아테네 민주정과 제국주의> (인간.환경.미래 22호, 2019년)
-김봉철 <‘데마고고스’ 클레온> (역사학보 113집, 1987년)
-채진원 <포퓰리즘의 이해와 이재명 현상에 대한 시론적 논의> (사회과학논집, 2019년 봄)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