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애니메이션 만화 원작은 ‘20세기 소년’ ‘몬스터’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우라사와 나오키 작이다. 데즈카 오사무(1928∼1989)의 유명 만화 아톰 시리즈 중 ‘지상 최대의 로봇’(잡지 기준 1964년 작) 편을 리메이크했다. 만화 플루토는 데즈카 원작에서 설정된 주인공 아톰의 출생연도인 2003년 연재를 시작(2009년 종료)했다. 연재 시기를 부러 아톰 출생연도에 맞춘 것. 만화를 통해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일찍이 사유한 데즈카 감독에 대한 헌사 의미가 담겼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플루토’에서 주인공 로봇 아톰(가운데)이 동생 로봇 우란을 지키려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반면 술탄과 그를 추종하는 박사는 플루토를 다그치며 전투에서 지면 자폭하게끔 설계한다. 작품은 묻는다. 누가 더 인간적인가? 인간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만화는 인간만을 주체에 두는 무성의한 이분법과 도식을 비튼다. 우라사와도 이 점에 끌렸으리라.
플루토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사유를 증폭시킬 정교한 세계관을 만든다. 인공지능(AI)과 기계공학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형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 로봇인권법에 따라 로봇들 역시 인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인간과 같이 살아간다. 로봇을 증오하는 인간과 그런 증오심마저 학습해 인간에 한층 더 가까워진 로봇이 출현한다.
로봇 아톰과 로봇 형사 게지히트, 플루토는 모두 고도로 진화해 인간을 닮았다. 그들은 악인과 선인 모두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1960년대 아톰 원작과 달리 플루토는 인간성 해석에 더 집중하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애니메이션에서 인간은 증오로 인해 스스로 종말을 향해 간다. 증오하는 것도 인간이고, 증오를 끊어낼 힘이 있는 것도 인간뿐이다.
아톰의 재해석 역사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1964년 데즈카 작 지상 최대의 로봇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다분하다. 이란으로 추정되는 한 중동 국가에서 만든 로봇이 지구 전역을 돌며 각국 대표 로봇들을 각개 격파하다가 일본 대표 로봇 아톰에 가로막힌다는 스토리는 미국인 레슬러를 때려눕히는 역도산의 프로레슬링 쇼처럼 보인다.
만화 플루토가 나온 2003년, 지상 최강의 로봇들이 로봇 무기화를 단행한 페르시아 왕국을 단죄하기 위한 다국적군에 참여했다는 설정 등은 이라크전쟁을 떠올리게끔 했다. 선악으로 도식화하는 서구 패권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족주의 해석,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되더니, 올해 공개된 애니메이션은 AI 시대와 중동 갈등 와중에 공개돼 공존과 증오 극복을 화두로 한 작품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트라우마에 갇힌 일국 민족주의에서 증오를 극복하는 보편성 추구로 나아가는 재해석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희망을 생각해 보게끔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밝힌 제작 기간은 10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작화감독 중 한 명이자 지브리 출신 가와구치 도시오가 감독을 맡았다. 시리즈는 총 8개 작품 각 1시간 분량이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