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단편적 언행뿐 ‘정치 함량’ 판단 일러 與는 ‘한동훈 띄우기’… 신당 관심 시들 혁신 없으면 총선도 ‘윤 vs 이재명’ 재탕 차기 주자 다 뛰게 해야 판 바꿀 수 있어
정용관 논설실장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좀 시들해진 느낌이다. 병력도 실탄도 없이 입으로만 ‘반윤(反尹) 신당’의 깃발을 휘날리기엔 힘에 부치는 듯하다. 여기에 한동훈 법무장관의 ‘시의적절(?)’한 정치 행보가 신당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인요한 혁신위가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강력한 저항으로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한 장관의 행보가 더 부각된 측면도 있다.
사실 현직 장관, 다른 곳도 아닌 검찰을 포함한 국가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대중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정부 출범 1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임명직 장관이 팬덤까지 형성하며 대선주자급 행보를 보이는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역린을 거스르려 작정한 게 아니라면 최고 권력자의 묵인, 혹은 독려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늘 “법무장관 본분에 충실하겠다”고 하지만 한 장관의 정치 커밍아웃은 점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가 보수층 일각에서 차기 주자로 본격 회자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인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말하는 경제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 ‘법무부TV’에 40분 분량의 동영상으로 올라 있는 이 강연은 현재 121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제주포럼 강연이나 야당의 공격을 받아치는 언변, 기자들과의 단편적인 문답 정도로 그의 정치 그릇을 가늠하긴 어렵다. 농지개혁에 상응하는 이민정책 개혁이 시급하다는 제주포럼 강연 내용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법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영역과 관련된 의제를 과하게 꿰맞추려 한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훨씬 예민한 정치 이슈, 복잡한 국가 현안에 대해 보다 긴 답을 내놔야 할 때가 많게 된다. 그걸 통해 정치인 한동훈의 함량(含量)이 드러날 것이다.
한 장관이 이준석류와는 다른 ‘스마트 우파’의 아이콘으로 우뚝 설지, 그저 그런 인물 중의 하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윤석열 아바타’로 규정하고 정권심판론 프레임으로 엮으려 할 것이 뻔한 만큼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 윤 대통령과 어떻게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한 장관의 정치비전, 정치력은 누구 말대로 ‘긁지 않은 복권’이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장관의 진로는 여당 혁신 문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보수 일각에선 이미 한동훈 띄우기가 한창이지만 한 장관의 총선 투입 시기, 총선 지휘 여부 등에 혁신 논의가 파묻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여당이 용산 출장소 비아냥을 듣게 된 것은 ‘당정대 혼연일체’의 도그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를 허물고 다양성을 복원하는 게 여당 혁신의 큰 줄기가 돼야 한다. 자칫 어느 의원 지적대로 ‘태자당’ 논란에 휩싸이면 여당 혁신 논의는 산으로 갈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긍정 30∼35%, 부정 55∼60%로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1년 반 가까이 이어져온 이 흐름이 몇 달 만에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리더십이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이를 구현할 엄청난 비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길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