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영국·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이뤄진 전격적인 조치다. 국정원의 잇단 내부 인사잡음에 따른 문책성 경질 인사로 보인다. 후임 원장 후보자는 곧바로 지명되지 않았고 신임 1, 2차장에는 홍장원 전 주영국 공사,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이 각각 임명됐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당분간 홍 1차장의 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이번 국정원 수뇌부 동시 경질은 정보기관 내부의 인사잡음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윤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국정원 조직 전체에 대한 강력한 경고 조치로 풀이된다. 국정원은 6월 윤 대통령 재가까지 끝난 1급 간부 인사가 닷새 만에 번복되는 초유의 인사 파동을 겪었다. 당시 전횡의 당사자로 지목된 김 원장의 최측근은 면직됐지만 이후 인사를 두고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급기야 파벌 다툼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내부 세력이 김 원장 체제를 흔들고, 이에 김 원장이 견제 차원에서 직무 감찰을 지시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인사 분란이 끊이지 않고 그것이 외부로까지 흘러나오는 것은 어느 조직보다 소리 없이 비밀스럽게 일해야 하는 국가 최고 정보조직에선 있을 수 없는 기강 문란이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간부들에 대한 일괄 대기발령 등 정치적 물갈이가 되풀이됐지만 이번 정부에서처럼 내부 인사 문제로 조직 전체가 술렁거리면서 수뇌부 간, 주류-비주류 간 갈등설까지 시시콜콜 언론에 오르내린 적은 없었다. 그만큼 국정원 조직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초유의 간부 인사 번복 사태로 홍역을 치른 지 5개월 만에 다시 수뇌부 동시 물갈이 같은 충격요법이 아니고선 구제불능의 조직이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