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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 공한증의 변화[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입력 | 2023-11-27 23:36:00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7번)이 2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중국과의 경기에서 전반 11분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은 뒤 황희찬(11번)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선전=신화 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2008년 2월. 중국 축구는 한국 축구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공한증(恐韓症)’을 떨쳐내려 애쓰고 있었다. 당시 중국 충칭에서 열린 2008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1차전 한국과의 안방경기를 앞두고 중국 축구계는 그때까지 30년 동안 이어져 오던 한국전 무승의 기록을 깨뜨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일부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안방경기로 열리니 지리적 이점(地)을 안고 있으며, 한마음으로 염원하며 인간의 노력(人)이 결집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 주신 기회(天)라는 것이었다. 또 ‘공한증은 미신’이라고도 했다. 경기 하루 전 세르비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감독은 “중국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국을 이기는 날이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경기는 한국의 3-2 역전승. 당시 중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역대 전적은 16승 11무가 됐다.

2023년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를 앞두고 중국 언론은 한국을 이기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이강인(파리생제르맹·PSG), 김민재(바이에른뮌헨) 등 한국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언급하며 약 2억 유로(약 2859억 원)에 육박하는 한국 선수단의 몸값이 중국 선수단 몸값의 20배에 이른다고 전하기도 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 때문에 한국전이 몹시 어려울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고 중국 팬들도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일방적 승리를 점쳤다. 손흥민과 한국 선수단을 보기 위해 공항에 중국 팬들이 몰려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결국 한국이 3-0으로 승리하자 중국 언론은 역시 한국과 중국의 실력 차가 두드러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15년 세월의 양 단면을 비교해 볼 때 중국의 공한증은 한국을 두려워하는 듯하면서도 이길 만하다고 여겼던 데서 이제는 한국에 대한 두려움과 높은 평가가 함께하는 데에 이르렀다. 손흥민에 대해서는 우러러보는 마음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경외(敬畏)’의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공한(恐韓)이 경한(敬韓)으로 바뀐 셈이다.

그동안 중국 축구가 한국 추구를 못 이겨 본 것은 아니다. 2008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바로 다음 맞대결이었던 2010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 축구선수권에서 한국은 중국에 0-3으로 지며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에서 처음 패했다. 이후 중국은 한국전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조 추첨에서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시리아와 함께 중국이 한국과 A조에 속하자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일본을 피하고 한국을 만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중국은 2017년 3월 중국 창사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한국을 1-0으로 이겼다. 이란과 한국이 A조 1, 2위로 월드컵 본선에 나서고 중국은 조 5위로 탈락했지만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2010년 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7년간 양국의 전적은 2승 2무 2패로 호각을 이뤘다.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다시 본격적으로 벌어진 건 2019년 이후다. 한국은 이때부터 중국에 4전 전승을 했다. 한국은 역대 중국과의 A매치 전적에서 22승 13무 2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김민재 등이 해외로 진출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중국 축구는 자국 축구계의 비리와 자국 리그 부진으로 인해 퇴보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자국 선수들은 부진한 상태에서, 같은 아시아 선수로서 그동안 높은 벽으로만 여겨졌던 유럽 리그에 진출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일부 중국 팬은 부러워하며 응원했다. 그러나 다른 팬들은 애국가가 나올 때 한국을 야유하고, 한국 선수들을 향해 레이저를 쏘며 경기를 방해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이 중국의 공한증에 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데서 느낄 수 있는 자기만족을 경계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중국은 개혁에 실패한 약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눈높이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강하고 효율적인 팀들에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더욱 발전하고, 세계 팬들의 진정한 존중을 받는 축구 한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