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서요.” 이런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업무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내게 평범한 회사원이라 소개한 사람들은 상당히 큰 조직을 운영하거나 전국 단위로 유통되는 브랜드를 관리했다. 그들의 일이 내가 만드는 원고처럼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 평범한 화이트칼라 직장인은 현대 사회의 개념적인 파이프라인을 설치하고 운용하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 위한 과정은 혹독하다. 오늘날 한국의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토너먼트 출전을 위해 꾸준히 계체량을 관리한 복서처럼 훈련과 자기 관리를 지속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세속 지표로의) 학력, 대외활동 등의 ‘스펙’이라 부르는 각종 점수를 꾸준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짧게는 대학 재학 동안, 길게 보면 청소년기부터. 나는 이 경쟁을 얼추 알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전혀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간에서 통하는 괜찮은 직장이 아니라도 매일 일하는 삶은 숭고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출근해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개근이나 장기근속에 상을 주는 건 구성원 사기 진작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쉽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들이 모여 경이로울 만큼 복잡한 현대 사회가 만들어진다. 이는 나의 업무인 취재 때문에 여러 직군 종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세요’ 논리에 쓸려 다녔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가 지친 채 벌집 같은 집단주택으로 귀가하는 삶을 반복하기 싫었다. 겉보기로만 조금 달라 보이는 잡지 에디터 일을 하며 몸으로 깨달았다. 모든 일에는 평범하고 지리멸렬한 구석이 있다. 직업의 종류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시각과 자세가 삶을 만든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성취야말로 특별하고 귀중한 것이다. 세상에 평범한 일은 없고 평범한 태도만 있음을 이제는 안다.
세상은 점점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간과하는 것 같다. 무작정 도망치라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자아 찾기 비즈니스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이에서 “스스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 모두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보고 싶었다. 매년 이맘때쯤 주요 기업의 인사가 한창이다. 직장인들은 인사철마다 거대 조직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기분에 휘말리지 마시고 즐겁게 한 해 마무리하셨으면 좋겠다. 세상에 평범한 회사원은 없으니까.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