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침체로 사업 승인 등 지연… 건설사 도산으로 자금줄도 끊겨 확약했던 탈퇴 분담금 못돌려줘… 토지 등 강제경매 급증해 161건 조합원들 피해 볼 가능성 높아져
“서울 강남4구에 지하철 5·8·9호선 트리플 역세권, 인근에 한강공원까지.”
서울 강동구 성내동 일대에 504채 규모의 아파트를 지으려던 한 지역주택조합. 이곳은 2020년부터 이 같은 문구를 내걸고 조합원을 모집했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조합원이 될 수 있고, 시행사 마진을 줄여 시세 대비 최소 20% 이상 싸게 분양받을 수 있다는 조건에 약 30명이 이 조합에 가입했다. 사업 진행 중이라도 탈퇴를 원하면 기존에 낸 분담금을 전액 돌려주겠다는 ‘안심보장 확약서’까지 내세워 이들은 확약서까지 썼다.
하지만 이후 조합은 180도로 돌변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사업계획승인 등 인허가 절차가 늦어지며 조합원 일부가 탈퇴 의사를 밝혔지만, 분담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 확약서가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돈이 1인당 평균 6000만 원에 달한다. 법원도 조합이 피해자에게 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정작 건설사 등에서 끌어올 돈이 없어 조합이 보유했던 땅마저 강제경매로 넘어가면서 경매 절차가 마무리되더라도 피해자들은 돈을 떼일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27일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에서 지역주택조합 명의의 토지·주택·상가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매가 총 161건으로 나타났다. 또 법원 판결문을 받았거나 저당권, 전세권 등을 실행해 경매 예정인 경우가 133건이었다. 서울에서는 △관악구 봉천동 △은평구 역촌동 △강서구 공항동 △송파구 거여동 등에서 14건의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3개월 전보다 75% 늘어난 수준이다.
지역주택조합은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구성원이 주택을 짓기 위해 결성하는 조합을 말한다. 조합원 자금으로 토지를 확보하며, 무주택이거나 소형(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1채 소유해도 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 내 집 마련 수요자에게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주택 경기가 얼어붙고 사업 자금을 대는 건설사까지 도산하며 지역주택조합 현장 분위기는 고꾸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27일까지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496건으로 전년 동기(297건) 대비 67.0% 늘었다.
지역주택조합 물건이 경매에 부쳐져도 유찰 가능성이 높은 데다 조합 물건이 낙찰되더라도 더 큰 난관이 있다. 조합이 확보한 땅이 줄면서 사업 성공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주택을 짓고자 하는 대지의 95% 이상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나머지 토지 소유권자를 대상으로 매도를 청구할 수 있다. 일반 주택 재개발, 재건축에서는 75%의 동의만 얻어도 매도 청구를 할 수 있는 점에 견주면 지역주택조합 기준이 더 까다롭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