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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치료효과 못 믿어” “사회적 낙인 두려워” 치료 포기 잇달아

입력 | 2023-11-28 03:00:00

[정신질환 치료 ‘끊어진 연결고리’]
치료 중단 ‘중증’ 16명 심층 설문조사
스스로 치료 중단→‘사고’ 악순환
돌봄가족 도움 등 정부 지원 절실




남상민(가명·34) 씨는 과거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다. 2010년 처음 진단된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치료제를 먹다가도 증상이 나아지면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사고’를 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증상은 점점 나빠졌다. 그랬던 그가 최근 수년간은 꾸준히 치료받으며 큰 탈 없이 생활하고 있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소개해 준 정신질환재활센터에 다니며 ‘지속 치료’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 씨는 “퇴원 후 믿을 수 있는 재활시설로 안내받았더라면 치료를 중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올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벌인 최원종(22)은 3년 전 조현병 전 단계로 진단됐지만 치료를 스스로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치료를 중단한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적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의 도움을 얻어 조현병과 우울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 환자 20명을 최근 심층 설문한 이유다. 설문 결과 이 중 16명은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치료 중단을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 가운데 11명은 치료를 중단한 이유로 ‘치료 효과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2016년 조현병으로 진단된 A 씨(28)는 “더는 치료받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착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증 정신질환자 B 씨(44)는 “효과는 별로 없고 졸음만 오는 것 같아서 약을 끊었다”고 했다. 환자가 병식(病識·스스로 아프다는 인식)이 부족한 건 그 자체가 증상의 일종이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꾸준한 치료의 필요성을 안내하는 사회적·제도적 도움이 부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합쳐지면 치료 거부로 이어진다. 응답자 중 5명은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압박이 치료 중단 이유였다고 했다.

환자 돌봄을 고스란히 떠안은 가족이 지치다 못해 환자를 입원시키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환자가 치료를 기피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임미현(가명·40) 씨는 “부모님은 생계를 이어야 하는데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보니 나를 입원시켰다. 그 후로 치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결국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중단 없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지속 치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상담 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료 기관, 나아가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줄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꾸준히 치료받아 증상을 잘 관리하는 동료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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