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디스틸러 ‘에디 러셀’ 아들과 방한 “한국 시장 성장 인상적… 일본보다 취향 고급” 4년 전 1000박스→올해 3만 박스 미국 버번, 국내 위스키 시장서 존재감↑ 와일드터키, ‘고연산·라인업 다변화’로 버번 고급화 주도
에디 러셀 와일스터키 마스터 디스틸러(오른쪽)와 그의 아들 브루스 러셀(와일드터키 블렌더)
팬데믹 영향으로 술집이나 바(Bar) 등 업소들의 영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위스키나 와인 업체들은 소비자 채널로 눈을 돌렸고 이로 인해 국내 유통채널도 확대됐다. 유통채널이 마트나 편의점 등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에 소비자가 접하기 어려웠던 주류들의 구매 접근성이 높아진 것이다. 가까운 편의점만 가도 다양한 술이 진열된 주류코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싱글몰트나 스카치, 버번 등 이전에 생소했던 위스키 용어들이 일반 소비자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홈술이 유행하기 시작한 팬데믹 초반에는 희소성을 강조한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오픈런’과 품귀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에 집중된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위스키 종류로 분산되는 흐름을 보였다. 국내에서 양주로만 부르던 위스키가 생산지역과 방식 등에 따라 세분화된 정식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화려한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가운데 스카치위스키와는 다른 특유의 개성과 히스토리를 앞세워 묵묵하게 성장하고 있는 위스키로 미국 버번을 꼽을 수 있다. 버번은 영화 ‘존윅’시리즈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존윅이 즐겨 마시는 위스키로 등장해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를 총괄하는 위스키 마스터 디스틸러(Distiller)가 아버지 ‘지미 러셀(Jimmy Russell)’과 아들 ‘에디 러셀(Eddie Russell)’이다. 한 세대에 1명 배출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마스터 디스틸러를 2대에 걸쳐 러셀 부자(父子)가 맡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증류소에도 2대에 걸친 위스키 마스터는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한다. 아버지 지미 러셀은 버번 위스키가 위기인 순간에도 장인정신으로 고집스럽게 버번의 명맥을 유지한 인물로 꼽힌다. 이로 인해 버번의 살아있는 전설, 버번의 아버지 등으로 불린다. 에디 러셀은 증류소 일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아들 위스키 마스터다. 아버지와 다른 본인만의 취향을 반영해 소량만 생산되는 러셀리저브 시리즈를 새로운 라인으로 선보였다. 러셀리저브 시리즈는 국내에서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킨 인기제품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와일드터키를 비롯해 이탈리아 캄파리그룹이 보유한 모든 브랜드는 류호준 대표가 이끄는 주류 수입·유통업체 트랜스베버리지가 담당한다. 트랜스베버리지는 캄파리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합작투자법인이다. 단순 주류 수입·유통을 넘어 캄파리그룹 한국법인 역할을 병행하면서 국내 시장 목소리를 전달한다. 특히 류호준 대표의 오랜 주류업계 노하우와 감각이 반영된 차별화된 마케팅을 전개하는 업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홈텐딩 키트와 제품 상자를 활용해 증류소 모형을 만들 수 있는 디스틸러리 패키지 등 개성 적인 제품과 판촉을 앞세워 국내 주류문화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트랜스베버리지가 전개한 판촉을 캄파리그룹 본사가 채용하는 등 감각적인 마케팅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에디 러셀 와일드터키 마스터 디스틸러
○ ‘에디 러셀’ 아들과 함께 방한… 내년 3대 부자(父子) 협업 한정판 출시
이달 초에는 와일드터키 더현대 서울 팝업스토어에 아들 마스터 디스틸러인 에디 러셀을 초대했다. 아버지 지미 러셀은 고령으로 비행기 탑승이 불편해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에디 러셀의 아들(지미 러셀의 손자)인 브루스 러셀이 이번 방한에 함께했다. 손자 브루스 러셀은 지난 2010년부터 와일드터키 증류소에 합류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원액 품질을 관리하는 블렌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 증류소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 러셀이 대를 이어 마스터 디스틸러가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러셀 부자 역시 말을 아꼈지만 이번 방한을 계기로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인상이다.와일드터키 제너레이션즈
마스터 디스틸러인 에디 러셀은 이번 방한이 2019년 이후 두 번째다. 팬데믹 직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첫 해외 방문이라고 한다. 한국에 이어 일본과 호주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현대 서울 와일드터키 팝업스토어
○ 와일드터키 한국 판매량 4년 만에 30배↑
에디 러셀은 “한국 시장 성장이 인상적이다”며 “4~5년 전 1000케이스에 불과했던 판매량이 올해는 3만 케이스를 돌파했다”고 설명했다. 국내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는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시장을 둘러보고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이번 방한 일정 대부분이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시음 및 소통 행사로 이뤄진 이유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소비자 취향이 고급스럽고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트렌디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스카치위스키처럼 와일드터키 역시 고연산 제품 인기가 높다. 특히 시장 규모가 큰 일본보다 취향이 고급이라고 한다.
마스터 디스틸러 꿈을 갖게 된 계기와 경험에 대해서는 “증류소에서 4~5년가량 일하면서 아버지 지미 러셀의 길을 가고 싶었다”며 “아버지가 계신데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지만 나중에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미 러셀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증류소 일을 배우도록 했다”며 “낮은 단계부터 하나씩 모든 증류소 일을 경험했고 이는 브루스 러셀 역시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에디 러셀은 이렇게 쌓은 블렌딩 노하우를 활용해 와일드터키 라인업을 강화했다. 아버지 지미 러셀 시절에는 와일드터키 101 플래그십 버번 1종만을 고집했지만 에디 러셀은 러셀리저브 등 여러 제품을 선보이면서 라인업에 변화를 줬다. 에디 러셀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와일드터키가 다양한 캐릭터를 가질 수 있었다”며 “한 위스키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동일 제품의 맛이 다를 수 있는 것 역시 개인의 여정을 가져가는 것이고 위스키만의 매력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취향에 대응하기 위해 라인업을 다변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루스 러셀 와일드터키 블렌더
○ 젊은 러셀이 선호하는 위스키… “할아버지일까 아버지일까”
브루스 러셀이 대를 이어 와일드터키 3대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브루스 러셀이 직접 답했다. 브루스 러셀은 “89살 할아버지(지미 러셀)가 매일 출근하는 열정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마스터 디스틸러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디 러셀)가 쌓아온 버번 위스키에 대한 레거시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지미 러셀과 에디 러셀 중 누가 만든 위스키를 선호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중립적으로 답변했다. 브루스 러셀은 “강렬한 버번을 선호하기 때문에 할아버지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버지의 고숙성 버번도 좋아한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스타일을 버무려 나만의 와일드터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고연산과 관련 있는 숙성에 대해서는 오래 숙성한다고 맛있는 위스키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에디 러셀은 설명했다. 가령 숙성고에는 1~7층의 오크통 보관대가 있는데 한 층에서 오래 숙성하거나 한 장소에서만 숙성하면 균형이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17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오랜 숙성으로 증발양이 많아 상업성이 나빠졌고 25년 숙성한 위스키는 맛이 이상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일정한 숙성 높이와 공간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숙성고 위치를 바꾸지 않는 제품도 있다. 와일드터키가 사용하는 오크통의 경우 40~50년된 오크통 제작 전문 업체 1곳에서만 공급받는다고 한다. 사용한 오크통은 이탈리아 캄파리그룹 측에 수출하고 남는 오크통은 아일랜드나 다른 국가로 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에디 러셀 와일드터키 마스터 디스틸러
○ 궁금했던 위스키 장인의 술 취향… 버번 즐기는 방법 “자유롭게”
위스키 마스터 부자의 주류 취향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브루스 러셀은 일단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단한 주당이라고 강조했다. 취향의 경우 할아버지 지미 러셀은 버번과 아이스티만 마시고 아버지 에디 러셀은 맥주와 보드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업무적으로 영감을 위해 진이나 데낄라, 레드와인 등은 경험삼아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대부분 버번만 즐긴다고 전했다. 반면 젊은 브루스 러셀은 맥주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러셀 부자(父子)는 인터뷰를 마치고 팝업스토어에서 소비자들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구매한 위스키 제품이나 원하는 곳에 친필 사인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