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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으로 성장하는 대구 섬유…사양산업이라는 편견 아쉬워[디지털 동서남북]

입력 | 2023-11-28 14:16:00




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섬유는 미래산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대구의 한 섬유기업인은 “섬유는 사양(쇠퇴)산업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 발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섬유라고 하면 다들 옷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제 그건 옛말이다. 지금은 모든 산업에 걸쳐 첨단 소재로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섬유를 바라보는 편견을 깨트려야 할 시점”이라며 “기업뿐만 아니라 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었다.

실제 섬유는 항공과 자동차, 선박, 풍력발전, 의료, 환경, 에너지, 토목, 건축, 전기전자, 스포츠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유리섬유를 활용해 만든 자동차부품은 차량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부품 손상을 줄이는 엔진 덮개로 쓰인다.

‘첨단 섬유, 꿈의 섬유’의 상징인 아라미드는 5㎜ 굵기에도 2t의 무게를 들어 올린다. 헬멧과 방탄복은 물론 요트 선체 건조에도 활용된다. 신체 내에서 분해 기간을 제어할 수 있는 소화기계 스텐트용 섬유는 의료 분야 대표적 사례다. 해양에서 생분해가 가능한 100% 바이오 원료 기반의 고분자 섬유도 최근 개발됐다. 어망 등으로 훼손되는 바다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

특히 얼마 전 북한이 위성 운반 로켓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2013년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떠올랐다. 기억이 선명하게 났던 것은 나로호 2단 로켓에 장착됐던 고압가스 저장 용기(자세 제어용 탱크)를 공급했던 업체가 대구의 복합소재 전문기업인 ㈜이노컴이었기 때문이다. 이 용기는 나로호가 2단 분리할 때 목표 지점까지 날아가도록 돕는 장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2013년 1월 30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제공




이 기업은 처음에 연료전지자동차(FCV)용 수소 저장 고압 용기를 개발했고, 이어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의 고압가스 저장 용기도 선보였다. 섬유강화 복합재료를 활용한 제작 공정은 독보적인 기술이다. 2016년에는 한국형 발사체 탑재를 위한 상온용 복합재 고압 탱크도 개발했다.

지난해 직원 40명이 매출 138억 원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과는 탄탄한 기초기술을 축적한 모기업 덕분이었다. 1970년대 섬유기계 제조업으로 출발한 모기업은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섬유산업 지원기관의 모태인 한국섬유개발연구원(대구 서구)의 역사를 보면 섬유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연구원은 1983년 대구섬유기술진흥원을 개원하면서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고, 1996년 지금의 연구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올해 9월 1일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이 연구원은 전국 16개 전문생산기술연구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00년 친환경소재개발센터를 건립해 의류 및 생활용 섬유 신소재와 신제품 개발을 위한 근간을 조성했다. 2012년 슈퍼섬유개발센터를 세우고 이전까지 의류에 국한했던 섬유산업을 첨단으로 다각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해 3월에는 경북 영천에 첫 번째 분원인 집진필터실증센터를 개원하면서 대기와 수질, 산업 현장 등의 환경 개선을 위한 필터 소재의 신뢰성 및 기술 확보의 초석을 마련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내년에는 작전환경적용실증센터를 구축해 국방, 소방, 경찰 등 공공 분야로 시장을 확대하는 기반을 다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지역 경제를 이끌던 섬유산업은 1990년대 들어 점차 쇠약해졌다. 고급화 전략 실패로 유럽 경쟁에서 뒤처졌고, 중국산 물량 공세에 밀렸다. 하지만 그 이후 20여 년간 연구개발에 힘쓴 결과 미래를 개척하는 섬유 기업이 늘고 있다. 원단, 염색에서 산업용 및 슈퍼섬유 분야로 확장 개척하는 노력이 대구 섬유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관심은 대체로 소극적이다. 첨단업종이 아니라는 판단에 투자 유치와 기반 확대에 섬유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섬유산업의 중심이었던 대구 서구가 한때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섬유 관광프로그램은 참여 부족 등으로 흐지부지되다 결국 사라졌다.

섬유가 미래산업으로 더 성장하려면 선입견을 깨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기업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잘 갖춰져 있는 인프라를 활용하고, 구조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미완의 섬유 르네상스가 다시 날아오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