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사투리로 망하고 있는 정치 정치권 밖에서 온 윤 대통령 소명은 정치 잔기술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정치의 표준어를 말하고 행하는 것
송평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는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뽑는 데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다. 선거를 앞두고 규칙을 바꿨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하려는 것과 똑같은 짓을 했다. 규칙은 일반 유권자의 의사를 30% 반영해온 데서 당원들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것으로 바꿨다. 당원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의 포괄 정당으로 가는 추세에서 보면 정체도 아니고 오히려 퇴행이었다.
대통령실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견 표명에 불과한 것을 트집 잡아 당 대표 출마 의지를 밝힌 나경원 전 의원을 공격해 주저앉혔다. 나 전 의원이 반윤(反尹)도 아니지만 친윤(親尹)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실은 김기현 의원이 윤심(尹心) 타령을 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안철수 의원이 윤안(尹安)연대를 거론하자 윤심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고 득달같이 비난하고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당 대표로 상징되는 중앙당 체제를 허무는 것으로 정치 혁신의 시동을 걸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낡은 것으로 보일 만큼 차별성을 갖게 됐을 것이다. 당장 당 대표 자리까지 없애지는 못해도 당 대표 선출에서 중립을 지켜서 당 대표를 통한 공천권 행사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더 집요하게 당 대표 선거에 개입했다.
물론 같은 당에 있으면서도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자기 당이 후보로 내세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두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정당인은 언론인이 논평하듯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없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그렇게 하려면 당을 나가야 한다. 정당의 생명은 기율(紀律)이다. 국민의힘의 기율은 이 전 대표의 응석을 받아주면서 무너졌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다. 그는 사면이 아니라 제명을 했어야 한다.
이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당장의 손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년 총선도 지난 대선처럼 사생결단할 선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더 비호감인 정당을 찍지 못해 비호감인 정당을 찍는 선거는 끝내야 한다. 이준석 신당이든 비명(비이재명) 신당이든 또 다른 신당이든 생겨서 총선에서만큼은 양당 투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내년 총선이 사생결단할 선거인지도 의문이다. 코로나 방역 때 치러진 지난 총선처럼 어느 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판이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하에서는 과반 의석만으로는 입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들 대통령이 거부권을 갖고 있는 마당에 걱정도 태산이다. 선거 때마다 선거를 사생결단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정치 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는 영남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거론하고 있다. 희생적인 험지 출마가 선거에 도움을 주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정당민주주의 원칙의 관철이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은 현역에게 유리하고 신참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현역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나 미뤄둘 수는 없다. 무언가를 언젠가 시작해야 한다면 그 언젠가는 항상 지금이 최선이다. 전략 공천도 아래로부터의 공천에 합치해서 이뤄져야 한다. 억지스러운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혁신도 순리를 따라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