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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부, 전국민 정신건강 생애주기별 맞춤 관리한다

입력 | 2023-11-29 18:14:00

동아DB


정부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5일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혁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담당해 온 정신건강 관련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하는 것과,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관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은 한 개인이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인생의 각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국가가 이를 맞춤형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금까지는 ‘치료’에 집중됐던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예방·조기 발견→치료→재활·일상 회복’이라는 전 과정으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해 증상이 악화되고,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반적인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바꾸는 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 당일에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의료계, 정신질환 환자·가족 단체 등도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 시기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었던 청년이 본인의 경험을 직접 발표하는 일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와 비전도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 검진 2년마다 실시… 4년내 무료상담 100만명 확대


정부가 이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내놓기로 한 건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올해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처럼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악화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잇달아 범죄를 저지르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허점도 드러났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 국민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겠다”며 관련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그간 산발적으로 추진해 온 관련 대책을 종합한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 10년→2년
이번 혁신 방안의 핵심은 정신질환을 사전에 예방하고, 이미 발병했다면 최대한 빨리 발견해 치료하고, 치료를 마친 뒤에는 재활을 거쳐 다시 안정적으로 일상 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 과정을 탄탄히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대책은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검사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고,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현재 국가 정신건강 검진은 만 20세부터 10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2년으로 단축할 방침이다. 검진 대상 질환도 지금은 우울증에 한정되지만, 여기에 조현병과 조울증 등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 검진을 할 때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시기별 맞춤형 검진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

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판별되면 무료 상담 기회를 제공해 치료 문턱도 낮출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고위험군 8만 명에게 정신건강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에 내년도 예산 539억 원을 책정했고, 2027년에는 지원 대상을 50만~100만 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 환자별 맞춤 관리 계획 수립
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조현병, 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중등도 이상 우울장애 등을 앓는 이들로, 2021년 기준 국내에 65만 명에 달한다.

퇴원 이후에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재활 치료에 참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퇴원을 한 환자와 가족 앞에 펼쳐지는 건 ‘치료 절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본보 11월 28일자 A1·10면 참조).

정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경우 약 처방이나 상담뿐 아니라 ‘집중관리군’ 등록을 통해 회복과 재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환자별 ‘케어 플랜’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증상이 완화됐다고 느껴 스스로 약을 끊고 병세가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정부는 퇴원 환자의 직업 재활과 동료 지원, 후속 검사뿐 아니라 돌봄에 지친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과 교육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 분야 예산은 올해 2억 원이었지만 복지부는 내년도에 31억 원을 책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편견이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美-英, 정신건강 체계 개혁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정책적 뒷받침과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자문기구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올해 4월 펴낸 보고서에서 “고소득 국가의 경우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1% 정도”라며 “한국의 경제 수준은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지만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2.6%(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개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1977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를 설립했고, 대선 때마다 후보자들이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설계를 공개하며 정책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바이든 정부도 정신건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 22개를 발표했다.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를 확대하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영국은 6년 전인 2017년 테리사 메이 당시 총리가 정신건강을 빈곤, 인종차별, 청년 실업 등과 함께 영국 사회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이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