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Z세대에게 운동화는 그냥 신발이 아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대중문화 아이템이자 투자 방법 중 하나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산 뒤 웃돈을 붙여 되파는 리셀은 ‘슈테크’(슈즈+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나이키가 3년 전 명품 브랜드 디올과 협업해 내놓은 운동화는 전 세계 8000명에게만 판매됐는데, 리셀 가격이 판매가의 10배인 3000만 원까지 뛰기도 했다.
▷슈테크보다 앞서 등장한 ‘샤테크’(샤넬+재테크)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백화점 앞에서 밤을 새우는 ‘샤넬 노숙자’와 대신 줄을 서주는 ‘오픈런 아르바이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에게만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명품에 갓 입문한 2030세대는 리셀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정품 구입보다 중고 거래가 낫다는 거였다. 국내 리셀 시장은 지난해 1조 원대로 커졌고 2025년이면 2조80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자 샤넬, 에르메스를 비롯해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운동화 브랜드들이 지난해부터 줄줄이 ‘리셀과의 전쟁’에 나섰다. 재판매 목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면 판매 제한이나 계약 취소, 회원 자격 박탈 같은 불이익을 주는 조항을 약관에 명시하고 사실상 리셀을 금지한 것이다. 회사 가격 정책을 훼손하는 개인 간 거래를 막고 브랜드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도였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내 돈 주고 산 물건 내 맘대로 처분도 못 하느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한국이 1인당 명품 소비 1위 국가에 올랐지만 이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작년에만 168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하는 명품을 구입했고, 1인당 구매액(325달러)은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이고 명품 사랑으로 유명한 중국을 앞질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리셀은 구매자 권리”라며 샤넬, 에르메스, 나이키를 대상으로 리셀을 금지한 약관을 고치도록 했다. 하지만 기꺼이 호갱이 되려는 소비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명품·수입 브랜드의 ‘갑질’은 계속될 것 같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