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게시판에서 채용정보를 살펴보는 대학생 모습(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2021.12.29/뉴스1
“나가 살고 싶은데 집값이 ‘이게 맞아?’ 싶더라고요.”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박모씨(30·남)는 최근 부모님 잔소리에 돈은 없지만 ‘나가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대학생 때 수원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자취를 했었다. 하지만 2021년 대학졸업 이후 거듭된 탈락에 금전적으로 부담이 커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캥거루족보다 한 단계 진화한 이른바 ‘리터루족(리턴+캥거루족)’인 셈이다.
3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치솟는 물가와 취업난, 주거비 부담 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실리’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눈치 보여도 본가 얹혀사는 게 합리적”
지난 27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분석한 우리나라 청년세대의 변화(2000~2020)’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부모와 동거하는 19~34세 청년 비중은 2명 중 1명(55.3%)꼴이었다. 그중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은 53.6%, 학업을 마친 경우는 66.4%였다.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독립하지 않거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취업 등을 이유로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셈이다.
자칭 ‘자발적 리터루족’이라는 새내기 직장인 김모씨(24·여)는 대학 입학 후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후 취업과 동시에 부모님 댁이 있는 충청도로 들어갔다. 서울에 있는 회사도 합격했지만 김씨는 미련 없이 충청도행을 택했다.
“대학 시절 서울에서 자취하며 학비·월세·생활비 때문에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어요. 결혼 전까진 직장에서 버는 월급 모으면서 계속 얹혀살며 부모님 도움받는 게 합리적인 것 같아요.”
◇사회경제적 기반 약한 청년들…“그냥 독립 안 할래요”
문제는 비자발적 리터루족 역시 많아졌다는 것이다. 독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해결되지 않는 물가 상승과 각종 경제적 불확실성에 피로감을 느낀 청년들은 앞으로도 독립할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박씨도 “독립하는 순간 집값, 생활비까지 다 나갈 거라 생각하니까 혼자 살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번듯한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싶은데 손만 안 벌려도 효도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청년의 생애주기 과정이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이어 결혼과 육아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자립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은 대학을 막 졸업한 25~29세가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2015년 32.2%에서 2020년 35.0%로 청년 세대 중 유일하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이 자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주거비”라면서 “양질의 임대 주택 등 주거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캥거루족이 되는 건 개인의 가치관·성향보단 사회경제적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며 “취업·주거·결혼·육아 등이 각각 다른 분야로 볼 게 아니라 다 같은 문제로 보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