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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찰위성과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의 효과[동아시론/김광진]

입력 | 2023-11-30 16:00:00

北 정찰위성 발사에 南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재개된 공중정찰로 北 선제 기습 억제력 향상돼
합의 효율 원점서 재판단하고 대비태세 높일 때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

11월 21일 북한은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여 탄도미사일 기술 사용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또다시 위반했다. 동시에 이미 전술핵 개발을 천명했던 북한은 핵무기 표적을 획득할 수 있는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핵무력 고도화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이 상황에 대처해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고 그동안 중지해왔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공중정찰을 재개했다.

2018년의 9·19 군사합의는 군사력의 배치, 훈련, 작전을 제한하는 재래식 군비통제 합의였다. 같은 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등 북한 비핵화 노력을 배경으로 탄생된 만큼, 비핵화 협의가 중단되면서 제도적 보완 발전 역시 중단돼버린 합의이기도 하다. 더구나 9·19 군사합의는 남북 군사력의 제한을 상호 검증 없이 각자의 의지에만 맡긴다는 약점이 있는 군비통제 합의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군비통제는 군사적 위협이 되는 국가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수월한 협상은 아니다. 냉전 시절 미소 핵 군비통제 협상에 임했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자주 사용했던 표현으로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것이 있다. 이 표현은 적대국과의 합의는 서로의 선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광범위한 검증 절차를 통해서 지켜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현장 사찰을 포함한 상호 검증이 이루어질 때 군비통제가 제도적 완결성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상호 검증과 확인 절차가 취약한 9·19 군사합의는 언제라도 사문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해상완충구역 내 포병사격이나 무인기의 영공 침범 등 합의 사항을 수시로 위반했고, 9·19 군사합의는 사문화되어졌다.

이렇듯 제도적 완결성이 취약한 군비통제의 성공은 당사국의 합의 준수 의지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군비통제 역사에서 당사국의 합의 준수 의지는 군비경쟁을 중단하고 방어에 충분한 정도까지 군사력을 감축하겠다는 합리적 충분성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비롯되어왔다. 그래서 당사국들이 포함된 국제관계에서 합리적 충분성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군비통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합리적 충분성을 수용할 만한 협력 분위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는 미중 전략경쟁으로 대표되는 강대국의 귀환 시대라고 일컬어지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발발했고, 동아시아에서는 대만해협의 긴장이 끊이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군비통제 협정들이 중단되는 현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2019년 미-러 양국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폐기되었고, 2023년 들어서는 러시아가 미-러 전략무기 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과 함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철회했다. 그리고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조약(CFE)에서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중단을 선언한 상태이다.

즉, 오늘날은 9·19 군사합의와 같은 군비통제 성공에 필요한 합리적 충분성에 대해 국가들이 공감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합리적으로는 전쟁에서 얻을 것이 없어 보였던 러시아와 하마스가 선제 기습으로 전쟁을 선택한 것처럼, 북한도 선제 기습 공격을 합리적 계산에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모방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재개되는 우리의 공중정찰은 단지 북한의 동향을 보다 정확히 탐지할 수 있다는 효용 외에도 북한의 선제 기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같은 압박은 곧 북한에 전달되는 억제 시그널이기 때문에 대북 억제의 신뢰성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은 강대국의 귀환 현상 때문에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도발 제재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와 합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우리가 독자적으로라도 북한에 유의미한 억제 시그널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는 북한의 전쟁 모방 심리와 핵무력 고도화 도발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 억제 시그널 효과를 발생시키며, 궁극적으로 억제의 신뢰성을 향상시켜주고 있다. 군비통제로서는 사문화된 9·19 군사합의가 효력 정지라는 억제 시그널로 우리 안보에 기여하게 된 것은 역설적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은 제도적으로도 취약했고 실제적으로도 사문화돼버린 군비통제 합의의 효용을 원점에서 재판단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강력한 억제 태세 구축에 매진해야 할 시기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