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은 협업과 연대를 통해 발전해왔다. 대표적으로 1954년 설립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세계 각국의 최고 과학자들이 모여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신비를 밝히고 있다. 현재 80여 개국 600여 개 기관이 함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06년부터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 중이다. 이곳에서 ‘신(神)의 입자’라 불렸던 ‘힉스입자’를 비롯해 59개에 이르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었으며, ‘월드 와이드 웹(WWW)’ 또한 발명되었다.
국제공동연구는 단독으로 진행할 때 부딪힐 수 있는 물적, 지적 한계를 넘어 훨씬 탁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11년간 노벨 과학상의 90%가 공동수상이었으며, 그중 80%가 수상자 간 협력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대부분 나 홀로 연구에 머물러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중 국제공동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불과하며,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 랭킹에 따르면 세계 대학 종합순위 41위 서울대와 56위인 KAIST도 국제공동연구 부문에서는 각각 세계 401위와 662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그간 미뤄왔던 글로벌 R&D 혁신을 시도하는 첫걸음으로 11월 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소규모, 단발성 지원 위주의 협력을 넘어 글로벌 R&D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먼저 3년간 5조4000억 원 이상을 12대 국가전략기술과 17대 탄소중립 기술 분야 중심으로 투자해 정부 R&D의 1.9%였던 글로벌 R&D를 6∼7%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상대국 상황에 맞춰 글로벌 R&D가 유연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회계연도 이월 허용, 기간과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형 사업 확대 등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한미일이 공동으로 국제 분담금을 적립해 필요할 때 연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상품이지만 자국의 시장만을 고려한 규격과 표준을 사용하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고 고립된다는 뜻이다. 뛰어난 창의력과 두뇌를 갖춘 우리의 연구자들이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처음부터 세계와 함께 연구하고 도전하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가장 힘이 되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연구자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더 큰 세계를 만나 다음 세대 우리 연구자들에게 거인의 어깨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