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지난달 13일, 올해 일본 가요계를 총결산하는 NHK 방송 ‘제74회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에 44팀의 출전진이 발표됐다. 그중에 K팝 그룹 4팀, 그리고 K콘텐츠 그룹 2팀이 선발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홍백가합전은 1951년에 시작한 일본의 장수 방송으로, 매년 12월 31일 저녁에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선발된 가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80% 전후의 시청률을 유지했을 만큼, 양력설을 지내는 일본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중행사와도 같은 방송이다. 요즘 시청률은 4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 대신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어 여전히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방송임에 변함이 없다.
한편 한국인 가수들의 홍백가합전 출연 역사는 짧지 않다. NHK 홈페이지에 따르면 1987년 조용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졌고, 특히 많은 가수가 출연한 해는 1989년 4명(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패티김), 2004년 3명(보아, 이정현, Ryu), 2022년에는 K콘텐츠 그룹까지 포함한다면 5그룹이 출연했다. 올해는 2022년에 이어 모두 그룹으로 K콘텐츠로 넓게 본다면 가장 많이 출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선발된 그룹 중에는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여성 아이돌이 눈에 띄는데,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일본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그들의 롤모델이 됐다. ‘미사모’는 ‘트와이스’의 멤버 9명 중 일본인인 ‘미나’, ‘사나’, ‘모모’로 구성된 3인조 유닛이다. 그리고 ‘르세라핌’ 멤버 5명 중 2명의 일본인 ‘사쿠라’와 ‘카즈하’가 그렇다. 2020년 12월 일본에서 데뷔했고, 올해 10월 한국에도 데뷔한 ‘니쥬’는 일본인의 귀여운 매력과 K팝의 힘이 넘치면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현지화가 이뤄졌다.
또한 자니스 그룹의 부재로 인한 남자 아이돌 가수의 빈자리를 K콘텐츠 가수들이 톡톡히 채워주고 있다. 올해 일본 연예계의 큰 이슈는 자니스 소속사 사장을 지낸 자니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폭력 파문이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남자 아이돌의 자리를 독차지해 온 자니스 소속 출신 가수들이 이번 홍백전에서 모두 제외됐다. 실제로 자니스 소속 아이돌이 선발되지 않은 것은 1979년 이래 44년 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스트레이 키즈, 세븐틴, 제이오원이 멋진 노래와 퍼포먼스로 채워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