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통’이란 철학으로 유명 명확한 현실인식에 바탕한 조언 독자들 열광… 3, 4주째 판매 1위 SNS선 독서 인증-격언 퍼나르기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철학계에서 은둔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천재성이 후대에는 인정받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이를 견뎌냈다. 쇼펜하우어는 40대 중반부터 명성이 높아졌다. 마흔을 앞뒀거나 삶을 되돌아보게 된 이들이 삶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주도적으로 살았던 쇼펜하우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노북스 제공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가 남긴 명언들이다. 삶의 희망 따윈 인정하지 않는 독설가의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삶의 궁극적인 요소”라는 그의 격언을 읽다 보면 비관주의에 빠질 듯하다.
최근 출판계에서 주목받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다룬 신간들. “막연하게 위로만 전하는 자기계발서에 지친 독자들이 쇼펜하우어의 조언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사 제공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부, 명예 등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넘어 자기 자신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짜 고통을 경험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염세주의자라는 시각도 있지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모든 희망을 잃고도 진리를 추구”한 사람으로 평가할 정도로 행복에 대한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웠다.
쇼펜하우어 관련 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마흔에…’가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기가 지속되는 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등 명확한 조언이 독자를 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선행 포레스트북스 본부장은 “‘괜찮다’, ‘잘하고 있어’라는 하나 마나 한 위로보단 명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조언이 통한 것”이라고 했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쇼펜하우어는 유머와 예리함, 삶을 꿰뚫는 시각을 갖춘 문장을 썼다”고 했다.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 같은 문장이 독자를 매료시켰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마흔에…’를 쓴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은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추운 날씨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상대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고슴도치에 비유했다”며 “직장, 가정, 학교뿐 아니라 나이 들어 홀로 살아가며 관계와 고독에 대해 고민한 독자가 반응한 것 같다”고 했다.
알라딘에 따르면 ‘마흔에…’ 독자의 45%, ‘남에게…’, ‘당신의…’ 독자의 35%가 40대다. 2008년 ‘30대 위로’ 열풍을 불러왔던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김혜남 지음·갤리온)를 읽었던 독자들이 이제 40대가 돼 쇼펜하우어에서 조언을 찾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현정 유노북스 편집팀장은 “무게 있는 독서에 관심이 깊은 40대가 철학에서 인생의 답을 찾고 있다”고 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를 맞아 삶에 대한 고찰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분위기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