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하게 업무 성과를 가로채고, 폭언이나 따돌림 문제로 불쾌하게 구는 직장 동료나 상사가 있다면 그들의 성격을 잘 관찰해보자. 일상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우리 곁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떠올린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같은 잔학무도한 이미지가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란 생각은 완전 오해다. A 상사처럼 평범한 얼굴로 우리 곁에 살아가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전과자도 아니고, 살인을 즐기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성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사이코패스 성향이란 매우 낮은 수준부터 중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사회에 잘 적응한 ‘성공적 사이코패스’ 성향인 이들은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 전체에서 사이코패스 비율은 1% 미만이지만, 기업 경영진에서는 4%로 크게 증가한다. 확률적으로 임원 25명 가운데 1명은 주변 사람에게 지독하게 구는 성향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목표를 위해 사람을 도구처럼 쓰며, 거짓말을 밥 먹듯 하거나 집요하게 누군가를 괴롭힌다. 고통은 그를 상사로 둔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 방법은 없을까.
우리 곁에 살아가는 ‘사이코패스 성격’의 사람들
사실 사이코패스는 정식 진단명이 아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속한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반복적 범법 행위 △충동성 △기만(거짓말, 가명 사용) △분노·공격성 △무책임 △죄책감 결여 등이 특징이다.사이코패스와 유사한 ‘소시오패스’도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속한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 성격이 상당히 비슷해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사이코패스는 뇌 결함 등 선천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고, 소시오패스는 양육 환경 등 후천적 영향이 크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사이코패스적 성격’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본 기사에서도 이들 특성을 아울러 사이코패스로 칭하기로 한다.
사이코패스 성향이란 일종의 스펙트럼과 같아서 ‘O,X’처럼 명료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 중에도 다양한 수준으로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으로 출근하는 ‘정장 입은 뱀’
로버트 헤어 교수와 폴 바비악 박사의 공저 ‘정장을 입은 뱀(Snakes in suits)’의 표지. 뱀을 목에 두른 직장인 표지 삽화가 상당히 직관적이다. 하퍼콜린스
●사이코패스 인격의 특성(PCL-R)
인간관계
달변가이며, 겉으로 봤을 땐 매력적
과대한 자기 가치관
병적인 허언
남을 속이고 조종함
감정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 결여
얄팍한 감정
냉담하고 공감 능력 결여
자기 행동에 책임지지 않음
생활방식
자극 추구
기생적 생활방식
현실적, 장기적 목표 결여
충동적
방만한 성행동
반사회성
자기 행동 통제 못 함
유소년기 문제행동
다양한 범죄력
다수 혼인 관계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잘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주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준다. 능력을 실제보다 과장하기 위해 경력이나 실적을 대담하게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크고 작은 공금횡령 문제도 불거진다. 손해 보는 것에 굉장히 예민해 누군가가 손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면 아주 집요하게 복수한다.
문제는 이들의 특성 가운데 일부는 기업에서 선호하는 리더십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냉담함은 압박적 상황에서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아 대담하고 강인해 보인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긴장 상황에서 심박수가 변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각성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도전적인 업무 앞에서 떨지 않고 침착하게 해낼 수 있다. 또 자아도취적이고 화려한 언변은 확신에 찬 리더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추상적 미래 비전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공감 능력의 결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결단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내 주위엔 몇 명이나 있을까?
일반인 가운데 사이코패스 비율은 1% 정도지만, 기업 임원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4%의 비율로 존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헤어 교수, 바비악 박사와 크레이그 노이만 미 노스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 7곳의 임원 203명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검사를 실시했다. 교차 평가를 위해 이들에 대한 동료 평가 3600여 건도 함께 진행했다.
또 사이먼 크룸 미 샌디에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에 의하면, 기업 고위 경영진의 12%가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앞선 연구와 편차가 크지만 적게는 25명 중 1명, 많게는 10명 중 1명일 수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구팀은 “안타깝게도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가 ‘미래의 리더’라고 누군가를 한 번 점찍으면, 아무리 동료 평가가 안 좋아도 결정을 흔들기 어려워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이유로는 “사이코패스적 성격 특성을 리더십 특성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윗선에 인상 관리를 잘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것이 그들이 조직에 해를 끼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준다고 판단하는 것일 수 있다.
“도발하지 말고 피하는 게 해결책”
거짓말로 남을 조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어쩌면 인간관계의 ‘포식자’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그다지 좋은 대처법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대처”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직장이나 어디서든 이런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을 만났다면 그들과 최대한 갈등에 휘말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교활한 이들과 싸우려다가는 오히려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경쟁자라고 인식하거나,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찍어서 괴롭힐 수 있다. 이들에게 업무 성과를 빼앗기고 일방적으로 업무 평판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팁을 참고해 보자.
우선 이런 동료들과 일할 땐, 업무 일정이나 지시 사항 등 기록을 꼼꼼하게 남기고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이들에게 위협적인 언행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업무 평가에 이를 활용해 열심히 방어해야 한다.
화가 난다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들과 ‘한판’ 뜨는 것은 좋지 않다. 이들을 도발하는 건 일종의 미끼를 무는 것과 마찬가지다. 폴 바비악 박사는 “부당하게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항상 침착하고 냉정해야 한다”며 “이들과 직면해야 할 땐 공격성이 아닌 단호함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평불만 하며 일을 손에서 놓아도 안 된다. 불성실한 직원이라는 평판을 퍼트릴 좋은 빌미를 주는 꼴이다. 화려한 언사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 대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좋은 대처법은 부서를 옮기거나 회사를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도 평판 조회를 위해 끝까지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종한 교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에게 이용당해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접촉 자체를 끊는 게 최선”이라며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은 물론 횡령 등 조직에도 해를 입힐 수 있기에 조직에도 위험하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