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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전력-공격성향 정신질환자도 입원할 병상 없어 ‘표류’

입력 | 2023-12-04 03:00:00

[정신질환 치료 ‘끊어진 연결고리’]〈하〉 자해-타해 위험 있어도 ‘입원절벽’
급성 정신질환인데 “병상-의사없다”… 병원 43곳 전화해 다음날에야 입원
병원, 수가 낮은 정신과 병상 축소
개원 쏠림에 중증치료 의사도 부족




김진희(가명·59) 씨는 넉 달 전 그때를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8월 25일 오후 2시경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전날 실종된 아들(31)이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맨발로 배회하고 있다는 경찰의 연락이었다. 아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다. 2014년 환각에 시달리다 아파트에 불을 질러 2년간 치료감호를 받았다. 남편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아들을 돌보며 수차례 비슷한 일을 겪은 김 씨는 아들이 빨리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태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 방화 전력 있는데… 병원들은 입원 거부

경찰은 가까운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 김 씨와 아들을 데려다줬다. 하지만 의료진은 “의사가 없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송파구의 다른 병원도 “기존에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만 받을 수 있다”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김 씨 일행을 태운 경찰차가 병원과 병원 사이를 ‘표류’하는 동안 경찰들이 정신병원 리스트를 들고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 데서도 오라고 답하지 않았다.

김 씨는 하는 수 없이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아들과 귀가했다. 그날 밤 아들은 다시 실종됐다. 아들이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오전 7시경 경기 양평군의 한 기차역이었다. 아들은 선로 위에 서 있다가 열차가 급정지한 덕에 목숨을 건졌다.

이후 김 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병원에 간신히 아들을 입원시켰다. 김 씨는 “국가가 해준 건 ‘철로를 무단 통행했으니 과태료를 내라’며 고지서를 보낸 것뿐”이라며 “아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빈 병상 찾아 병원 43곳에 전화


중증 정신질환자가 갑자기 환각이나 망상 등 극심한 증상을 보일 때 가장 중요한 건 빠르고 안전하게 병원에 데려가 집중 입원 치료하는 것이다. 그게 안 돼서 벌어진 게 2019년 4월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전국 병원 10곳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설치하고 시도마다 정신응급 이송 체계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급성기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하다.

최근 입원 병상을 찾기 위해 병원 43곳에 전화해야 했던 A 군(16)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 군은 지난달 25일 오전 6시 반 공격적인 이상 행동을 보여 서울의료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다. 입원 후 관찰이 필요했지만 폐쇄병동은 만실이었다. 의료진이 오전 11시부터 수도권 다른 병원의 수용 가능한 병상을 찾아 전화했지만 전부 “병상이 없다”, “청소년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A 군은 다음 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경기 안산시의 한 병원에서 ‘수용 가능’ 통보를 받았다. 박근홍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급성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받아주는 병상과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환자 가족들은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인맥으로 알음알음 병원을 수소문한다. 유지현(가명·67) 씨는 올 1월 29세 조현병 아들이 실종 후 일본에서 발견됐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들은 조현병 환자였지만 항공권 발권과 출국 수속을 모두 통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아들을 찾아 귀국시켰지만, 병원들은 “사흘 후에나 입원할 수 있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유 씨는 환자 가족 모임 추천으로 어렵사리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유 씨는 “정신질환자와 가족에게는 모든 게 ‘각자도생’이다”라고 말했다.



● “수지타산 안 맞아” 병상 줄이고, 의사들은 개원 쏠림


급성기 병상이 부족한 근본 원인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다. 최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켜 집중치료하면 하루 25만134원을 받는데,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다. 일본(약 50만 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단기간 집중 관리가 필요한 급성기 환자와, 장기 입원 중인 만성 환자의 입원료에 별 차이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병상 운영 기준까지 강화되면서 많은 병원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을 줄이고 있다.

증상의 정도와 무관하게 의사 1명당 입원한 정신질환자 60명을 볼 수 있도록 한 인력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과 대만은 의사 1명당 환자 수를 증상에 따라 차등화해 운영한다.

빈 병상은 있는데 환자를 돌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경기 지역의 한 정신병원장은 “하룻밤 당직비로 50만 원을 줘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의대에서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다. 올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170.1%로 성형외과(160.3%)나 피부과(158.6%)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는 2018년 7월 정신질환 상담을 장려하기 위해 관련 수가를 올렸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마음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신건강 전문의들이 너도나도 ‘병원 차리기’에 나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동네의원 근무 인원은 2016년 1215명에서 올 9월 2224명으로 늘었다. 반면 병원급 이상 근무자는 2026명에서 1882명으로 줄었다. 동네에서 가벼운 우울증 등 경증 환자들을 상대로 외래 진료만 보는 의사들은 늘었고, 대형 병원에서 중증 정신질환 환자들을 입원 치료할 의사는 줄었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전공의를 마치고 전임의(펠로)로 병원에 남아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에 대해 더 배우려는 의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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