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 ‘끊어진 연결고리’]〈하〉 자해-타해 위험 있어도 ‘입원절벽’ 급성 정신질환인데 “병상-의사없다”… 병원 43곳 전화해 다음날에야 입원 병원, 수가 낮은 정신과 병상 축소 개원 쏠림에 중증치료 의사도 부족
김진희(가명·59) 씨는 넉 달 전 그때를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8월 25일 오후 2시경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전날 실종된 아들(31)이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맨발로 배회하고 있다는 경찰의 연락이었다. 아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다. 2014년 환각에 시달리다 아파트에 불을 질러 2년간 치료감호를 받았다. 남편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아들을 돌보며 수차례 비슷한 일을 겪은 김 씨는 아들이 빨리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태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 방화 전력 있는데… 병원들은 입원 거부
경찰은 가까운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 김 씨와 아들을 데려다줬다. 하지만 의료진은 “의사가 없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송파구의 다른 병원도 “기존에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만 받을 수 있다”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김 씨 일행을 태운 경찰차가 병원과 병원 사이를 ‘표류’하는 동안 경찰들이 정신병원 리스트를 들고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 데서도 오라고 답하지 않았다.
이후 김 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병원에 간신히 아들을 입원시켰다. 김 씨는 “국가가 해준 건 ‘철로를 무단 통행했으니 과태료를 내라’며 고지서를 보낸 것뿐”이라며 “아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빈 병상 찾아 병원 43곳에 전화
상황이 이러니 환자 가족들은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인맥으로 알음알음 병원을 수소문한다. 유지현(가명·67) 씨는 올 1월 29세 조현병 아들이 실종 후 일본에서 발견됐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들은 조현병 환자였지만 항공권 발권과 출국 수속을 모두 통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아들을 찾아 귀국시켰지만, 병원들은 “사흘 후에나 입원할 수 있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유 씨는 환자 가족 모임 추천으로 어렵사리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유 씨는 “정신질환자와 가족에게는 모든 게 ‘각자도생’이다”라고 말했다.
● “수지타산 안 맞아” 병상 줄이고, 의사들은 개원 쏠림
급성기 병상이 부족한 근본 원인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다. 최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켜 집중치료하면 하루 25만134원을 받는데,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다. 일본(약 50만 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단기간 집중 관리가 필요한 급성기 환자와, 장기 입원 중인 만성 환자의 입원료에 별 차이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병상 운영 기준까지 강화되면서 많은 병원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을 줄이고 있다.
빈 병상은 있는데 환자를 돌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경기 지역의 한 정신병원장은 “하룻밤 당직비로 50만 원을 줘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의대에서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다. 올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170.1%로 성형외과(160.3%)나 피부과(158.6%)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