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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유럽 흑사병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 한국 저출산’

입력 | 2023-12-03 23:48:00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로스 다우섯은 2일 ‘한국 소멸하나’라는 도발적 제목의 칼럼에서 “흑사병 창궐 이후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빠르게 한국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근거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인 0.7명을 적용하면 한 세대가 200명이라고 할 경우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15세 여성이 가임 기간이 끝나는 49세까지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숫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 10월 발표한 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0.7에서 반등하지 않고 유지될 경우 2040년 0∼14세 인구는 2020년의 절반가량으로 줄어든다. 0∼14세 인구가 200명이라고 한다면 20년 만에 10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우섯이 한 세대를 30년으로 봤다면 30년 만인 2050년에는 얼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흑사병은 1348년 이탈리아에 상륙해 4년 만에 유럽 총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했다. 파리 피렌체 런던 등 도시에서는 사망률이 50∼80%에 이르렀다. 전염병에 의한 단기간 급속한 인구 감소이긴 하지만 당시는 전염병 없이도 사망률이 높아 장기간 인구 회복이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낮은 출산율에 의한 장기간 감소와 비교하는 것이 꼭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총인구는 합계출산율 0.7이 유지되더라도 고령 인구로 인해 2040년에 2020년보다 5% 정도 감소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둬야 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8년째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유일한 나라로서 꼴찌에서 두 번째인 나라와 압도적 차이로 꼴찌다.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상황도 5년째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가 겪는 기록적인 저출산이 이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가 뉴욕타임스 칼럼일 뿐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해 가공 무역을 통한 수출밖에는 먹고살 길이 없다. 그래서 우수한 인력을 키웠다. 인력을 키우는 데는 돈이 든다. 내부 경쟁은 점차 심해져 공교육으로는 따라잡지 못하고 사교육으로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비혼(非婚) 출산에 호의적이지 않은 문화 때문에 기본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이 더 떨어지는 것은 사교육비 때문이다. 다우섯도 그 점을 지적했다. 성공한 그 이유 때문에 실패한다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공식을 피해 가야 진짜 성공한 나라가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