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환 측 반란군과 이에 맞서는 국방부 헌병대. (영화 서울의 봄 갈무리) ⓒ 뉴스1
12·12 당시 서울 중구 필동의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 일병으로 군 복무 중이었던 유 전 의원은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며 “당시 현장에서 겪었던 충격적인 기억들이 지금도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지휘관인 33경비단장(김진영)은 반란군에 가담해 자기 혼자 청와대 30경비단(단장 장세동)에 가 있었고, 필동의 33경비단 병력들은 부단장 지휘하에 장태완 사령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2012년 국회 국방위원장이 된 저는 ‘고(故)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을 박근혜 정부 국방부와 일부 국방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3년 4월 통과시켜 그 이듬해 보국훈장 추서로 김오랑 중령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켜드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44년전 그날 밤 전사한 고 정선엽 병장, 고 박윤관 일병의 명예를 지켜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는데 적과의 교전이 아니라 정치군인들의 쿠데타 속에서 명령을 따르다 전사한 이 병사들의 명예를 지켜드리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유 전 의원은 “영화 서울의 봄‘의 날갯짓이 정 병장과 박 일병의 명예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고 정선엽 병장과 고 박윤관 일병에게도 훈장과 그들의 전사를 기리는 흉상이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제대 3개월을 앞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쿠데타군이 쏜 총에 맞아 전사한 고(故) 정선엽 병장과 사망날짜가 적힌 서울현충원 고인의 묘비. 당시 고인은 국방부 헌병대원으로 국방부 점령에 나선 1공수여단에 맞섰다. ⓒ 뉴스1 DB
박윤관 일병은 수경사 33헌병대 소속으로 신군부 측인 상관의 명령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공관 초소를 점령한 뒤 탈환에 나선 해병대가 쏜 총에 맞아 1979년 12월 13일 새벽 순직했다.
신군부측은 박 일병에게 상병으로 1계급 추서해 반쿠데타군 소속이었던 정선엽 병장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병들이었던 고 정선엽 병장, 고 박윤관 일병에 대한 추모비 건립, 훈장추서 요구가 있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이에 유승민 전 의원 등은 고인들의 명예도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