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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동창 5년간 ‘가스라이팅’…1억6000만원 뺏은 20대 구속기소

입력 | 2023-12-04 18:00:00


일본으로 함께 유학을 떠난 고교 동창을 5년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하며 억대의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한 20대 남성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강선주)는 2018년부터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함께하던 피해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배해 5년간 1억6000여만 원을 갈취하고 폭행한 혐의로 A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A 씨는 피해자의 머리를 폭행해 뇌출혈 상해로 영구 장애를 입혔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프로그램에 함께 지원한 피해자와 일본 오사카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A 씨는 타국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의 상황을 악용해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하면서 가스라이팅을 통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피해자가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시작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게임 제작회사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한 후 가짜로 취직이 된 것처럼 속였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게 “게임 회사가 요구하는 ‘게임 승수 달성’, ‘후기 작성’부터 해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피해자가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경우 “손해가 발생해 갚아야 한다”고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회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유령 회사였다.

A 씨는 2019년 3월부터는 ‘게임 회사에 대한 채무부담’이라는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 결국 피해자는 A 씨에게 속아 게임 회사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줄 알고 자신의 생활비 80%가량을 A 씨에게 지속적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피해자를 노예 취급하며 비정상적인 생활 규칙을 지킬 것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사나 수면, 목욕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생활 규칙을 정한 뒤 피해자로부터 “밥 먹었습니다” “세수했습니다” 등의 보고를 받았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거나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A 씨는 ‘계약서’, ‘생활 규칙’ 등을 20개가량 작성해 ‘규제 위반 시 10만 원부터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이 청구된다’ ‘제3자와 연락은 엄격히 금한다’ ‘수면시간을 초과한 수면 및 졸음도 엄격히 금한다’ 등의 내용으로 피해자의 생활 자체를 통제했다. 조사 결과 A 씨의 계좌에는 피해자가 ‘무단 지각’ ‘벌점 초과’ ‘자택 도착 미보고’ 등의 명목으로 돈을 보낸 내역이 다수 확인됐다.

이와 같은 수법으로 A 씨는 2020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피해자로부터 405회에 걸쳐 총 1억6000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 등을 가로챘다. A 씨는 피해자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부모나 여동생이 대신 갚아야 한다”며 채무변제 계약서까지 작성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A 씨에게 보낼 돈이 부족해지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A 씨는 지난해 9월 피해자가 게임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머리를 여러 차례 폭행해 뇌출혈 상해를 일으켜 피해자는 영구적 장애를 입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일본 구급대원에게 A 씨는 “피해자가 혼자 넘어졌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A 씨는 피해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관리하면서 피해자의 부모나 지인으로부터 온 메시지는 삭제하고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등 외부인과의 접촉도 철저히 차단했다. 피해자의 부상 사실도 이같은 방식으로 은폐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SNS 계정까지 A 씨가 관리하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어차피 도움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순응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건을 초기 단계부터 수사한 서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게임 회사 위장 취업을 시작으로 A 씨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됐다”며 “A 씨는 유학 생활로 돈이 부족해지자 피해자의 금품을 가로챌 의도로 치밀하게 접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평범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심리 상담과 경제적 지원 등을 이어갈 방침”이라며 “A 씨에 대해선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