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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전쟁[임용한의 전쟁사]〈292〉

입력 | 2023-12-04 23:30:00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미군들은 푹푹 삶는 여름의 무더위, 체감기온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악몽처럼 기억한다. 고통스럽기는 겨울의 추위가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장진호 전투, 1951년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등, 최악의 전투가 겨울에 몰려 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겨울은 전쟁의 계절이었다. 거란, 여진, 후금 등 만주의 유목민족은 가을에 군대를 소집해서 겨울에 한반도를 침공했다. 유목민족은 민과 군이 일치하는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1월이 되면 생업 전선에 복귀하기 위해 전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음력과 양력에 따라 달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거란전쟁, 병자호란의 주요 전투가 12월에 몰려 있다.

현대인에게 12월은 한 해의 소회, 밤거리를 밝히는 크리스마스의 불빛, 송년회로 채워진 달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가장 야속하게 느껴지는 달인데, 희한하게 이 한 달에 시간의 속도가 제일 빠르다.

사실 과거라고 12월이 전쟁의 위협으로 채워진 시기는 아니었다. 조선 500년 동안 북방민족의 겨울 침공은 정묘, 병자호란 2번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백화점은 없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소회로 연말연시를 맞이하고 보냈을 것이다.

산업사회가 된 현대에는 꼭 겨울을 택해 싸워야 할 이유도 없어졌다. 굳이 12월에 전쟁을 떠올려야 할 마지막 이유도 사라졌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전쟁은 잊고 평화로운 세모를 즐기면 되는 걸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번째 12월을 넘기고 내년까지 지속될 기세이다.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 또한 종전의 해법도 기약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외국의 전쟁을 알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바로바로 소식이 들어오고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 이젠 1년 365일이 전쟁의 계절이다. 12월이 선물하는 특별한 평화와 소망의 감정을 평생토록 영위하고 싶다면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12월이 전쟁의 계절이었다는 사실을 마음 한편에 걸어 두어야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