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무역 수출항 함부르크 AP뉴시스
원래 독일은 유럽 국가 중 재정 건전성이 탄탄한 모범생으로 꼽힌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뒤 각국의 재정 풀기 속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잘 관리해왔다. 그랬던 독일에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추경해도 24조 원 부족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P뉴시스
예산 공백이 생기자 독일 내각은 448억 유로(약 64조 원) 규모의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하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을 고려하면 여전히 170억 유로(24조 원)가 부족한 상황이다.
구멍 난 예산을 어찌 매울 지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다. 고물가, 고금리로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증세 가능성이 언급된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재정준칙’ 개혁 목소리
이번 예산 위기를 점화한 건 결국 ‘부채 브레이크’라는 일종의 재정 준칙이다. 재정 준칙은 재정 건전성 지표다. 국가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한국에서도 국가 부채가 불어나면서 한국형 재정 준칙을 논의하고 있지만 국회에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한국에선 법제화조차 안 되고 있는 재정 준칙이 독일에선 일찍이 2009년 헌법에 명시됐다. 독일은 통일 직후인 1991년에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39%였을 만큼 재정이 탄탄했지만 통일 비용으로 막대한 재정을 쓰고, 저성장이 이어지며 나라 빚이 급격히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 관리 지표 덕에 실제 독일 GDP 대비 공공 부채 비율은 2010년 82%에서 2019년 60%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쓰느라 부채 브레이크는 중단됐다.
반면 개혁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슈피겔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3분의 2가 부채 브레이크에 찬성하고 있고, 개혁을 하려면 설득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독일인 대다수가 이 제도 덕에 독일 재정과 경제 기초체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연정 균열 확대”
부채 브레이크 개혁 논란이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독일 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여파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경제연구센터(ZEW)는 4일 “독일의 예산 위기가 이미 타격을 입은 경제에 또 다른 타격을 입혔다”며 “투자자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대형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은 최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이번 판결이 독일 공공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피치의 근본적인 견해를 바꾸진 않는다”면서도 “내년에 부채 브레이크 규정이 재활성화 되면 재정 삭감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이는 집권 연정의 균열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독일은 2023년 주요 7개국(G7) 가운데 경제가 위축되는 유일한 국가로, 2024년에는 예상 보다 더 큰 재정 긴축으로 회복세가 방해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