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파친코’ 등 번역 황석희 에피소드 다룬 에세이집 펴내 “오역 반성엔 자존심 같은건 없어 관객과 가까운 번역가 되고 싶어”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장애인을 가리키는 단어는 ‘농아인’으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납득하게 됐다. 그는 제작사에 연락해 주문형비디오(VOD)라도 자막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영화사 입장에선 귀찮은 일이었지만 ‘번역 AS(애프터서비스)’로 유명한 그의 설득에 결국 그 단어는 모두 바뀌었다. 그는 지난달 17일 출간된 에세이 ‘번역: 황석희’(달)에 이 에피소드를 쓰며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반성에 자존심 같은 거 없어.”
황 번역가는 4일 전화 인터뷰에서 “18년 전 번역을 시작할 때부터 최고의 번역가가 되진 못해도, 관객과 가장 가까운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원작 속 선을 넘나드는 말장난을 한국어의 말맛과 동시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이른바 ‘초월 번역’으로 주목받았다. 영화 ‘데드풀’(2016년)에서 농담으로 가득한 오프닝 크레디트를 한국식 욕설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이다. 출연진을 가리킨 자막 ‘God’s perfect idiot’를 ‘신이 내린 또라이’로, 제작자를 가리킨 자막 ‘Asshats’를 ‘호구들’이라고 번역해 화제가 된 것이다. 또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년)에선 스마트폰 문자 속 이모지인 ‘스마일’과 ‘주먹’을 자막에 넣었다. 가로 자막 한 줄에 넣을 수 있는 글자 수인 12자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는 “자막은 넓은 캔버스(화면 전체)가 아닌 작은 울타리(화면 맨 아래)에 넣어야 하니 물리적 한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며 “여태 번역한 영화 자막 100만 개 중 실험적 시도는 10개 안팎에 불과하다. 전통적 틀에서 벗어날 땐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번역하는 시대, 영화번역가의 미래는 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