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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윤 대통령의 변화, 신년기자회견을 보면 안다

입력 | 2023-12-06 23:51:00

면담 요청도 보고 못 받았다는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은 제대로 보고받고 있나
여당 총선 성패는 대통령 지지율이 관건
“소통하겠다” 초심 회복, 국민 앞에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시집이 있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떠올라 가슴을 치게 만드는 제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최근 한 일간지가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을 보면 ‘나는 몰랐다’는 대목이 왜 그리 많은지 가슴을 칠 정도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몰락을 몰고 온 공천 파동을 놓고도 그런 소리를 했다. 김무성 당시 대표가 면담도 요청했고 전화 통화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는데 자신은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거다.

기막힐 노릇이다.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해 달라”며 ‘총선 심판론’을 들고나온 뒤 곳곳에서 진박(진짜 친박) 마케팅, 진박 공천 갈등으로 난리라고 언론마다 도배를 하는 상황이었다. 김무성이 대통령과의 대화를 수차 요청했으나 현기환 정무수석이 안 된다고 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참다못해 전화 통화를 요구하자 정무수석이라는 자가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더라는 거다. 2016년 1월 말 우리 신문 5면 통단으로 달린 김무성 인터뷰 제목이 ‘진박 마케팅 역효과…청(靑)과 터놓고 대화 못 해 안타깝다’였다.

사인(私人)은 “몰랐다”고 혼자 한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인의 뒤늦은 회한은 개인적 비극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정확한 보고를 못 받아 암군(暗君)으로 전락한다면 나라와 국민에 죄(罪)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독재자’로 찍힌 대통령들도 임기 초엔 입바른 소리를 따로 챙겨 듣곤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고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속 야당’ 역할을 했던 대통령 부인의 전형(典型)으로 추앙받는다. 혼자선 힘들 때면 1970년 당시 이건개 사정비서관을 불러 비판 여론을 보고하라고 옆구리를 찔렀다고 했다. 대통령은 안면이 경직되면서도 끝까지 듣고는 쓴 약을 마신 것처럼 “고맙다”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는 거다.

김영삼 정부 때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5년 고려대 대통령학 수업에서 “대통령들이 빠지는 가장 큰 함정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서실, 정보기관, 여당, 행정부 등에서 최고의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도 각기 자신들 이익에 맞게 해석해 보고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임기 말도 아닌, 출범 1년 반밖에 안 된 윤석열 정부에 보고 시스템 붕괴 경보음이 요란한 건 위험한 징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4월 “특히 서방 관리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나토) 동맹국들이 어려움을 겪는데도 한국이 부산 엑스포 개최 지원 확보에 집착하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라는 칼럼까지 실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9월 ‘한 달 안에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연 현대 외교사의 대통령’이라고 기네스북에 신청할 판이라고 ‘윤비어천가’나 불러댔다.

‘엑스포 2030’ 유치에 실패한 뒤 윤 대통령은 “저희들이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인정하긴 했다. “모든 것이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과 달라진 것도 같다. 하지만 정보 실패, 보고 잘못에 책임을 물어야 할 비서실 개편에서 비서실장은 여전히 굳건했고 국정기획수석은 정책실장으로 승진했으며 총선 출마를 노리는 수석 등 보좌진은 ‘윤심’을 싣고 꽃동네로 출동할 모양이다. 이래서야 과연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이 진정 달라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총선 성패는 대통령 지지율에 달려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버티고 있는 것이 국민의힘의 희망이긴 해도 혹시 모른다. 그가 총선 승리를 위해 과감히 물러나는 ‘연기’를 한다면 국민의힘은 믿을 데가 없어져 버린다.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겸허한 모습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내년 초 신년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도록 연출하는 ‘국민과의 대화’는 또 하나의 홍보 행사일 뿐이다. 올 초처럼 대통령이 편한 언론 하나만 택해 독점 인터뷰를 갖는 건 더 많은 독자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다. 묻고 따지는 기자들이 싫고 지겨워도 하는 게 낫다. 정치는 말이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한다. 거북한 보고를 받으면 화부터 버럭 낸다는 소문을 날리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내년 초 신년기자회견으로 ‘달라진 윤석열’을 국민 앞에 입증할 필요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