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조용한 주택가에 덩그러니 책방이 있었다. 김 서린 유리문을 열자, 와락 훈기가 달려들어 껴안아 주었다. 책장 전면에 내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테이블에 독자들이 앉아 있었다. 책방지기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여기 앉으세요.”
책방지기는 토마토수프를 냄비째 테이블에 가져왔다. 김이 폴폴 나는 주홍색 수프. 채소들 다져 넣어 오래 뭉근히 끓인 수프를 그릇에 나눠 담아,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문 닫은 책방에 주홍 불빛 하나 빛나고, 수프를 먹으며 조곤조곤 대화 나누던 우리 얼굴도 토마토수프처럼 발그레해졌다. 바깥은 겨울인데 테이블은 따뜻했다. “언제 오실까 기다렸어요. 멀리까지 와주셔서 기뻐요.”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여기 앉으세요” 말을 건네는 것. 어떤 책에서 진정한 환대란 그런 것이라고 읽었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환대(歡待)의 한자 뜻은 ‘기쁘게 기다린다’. 반기는 마음 이면에는 기쁘게 기다리는 마음이 스며 있는 걸까. 떠들썩하지 않아도 조용한 대접에서 나를 기쁘게 기다려 왔음을 짐작할 때 어쩔 도리 없이 마음을 내어주고야 만다. 그 겨울, 책방을 나서며 예감했다. 진정 환대받고 싶을 때 다시 여기 문을 열게 될 거라고. 환대와 정성이 담긴 그날의 테이블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따뜻하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