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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란거리가 건강보험 무임승차 문제다. 퇴직 후 꽤 많은 소득이 있는데도 자녀의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리거나, 해외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자녀나 지방에서 여유 있게 사는 노부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다는 식이다. 불법 여부를 떠나 한국의 건보 제도가 피부양자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현행 건보 제도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직장에 다니면 그 배우자(사실혼 포함)와 아들딸,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장인 장모(또는 시부모), 손주와 증손주, 형제자매까지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건보 가입자 5141만 명 중 직장 가입자는 1960만 명, 이에 딸린 피부양자가 1704만 명으로 보험료를 내는 지역 가입자(1477만 명)보다 많다. 3명 중 1명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건보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피부양자가 되려면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같은 소득과 재산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법망이 성글어 억대 외제차를 몰면서도 건보료 한 푼 안 내는 무임승차자가 3만 명이나 된다. 외국인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고 있어 한국에서 일하는 아들딸, 사위, 형제자매 덕에 아프면 한국에 입국해 바로 피부양자로 등록한 후 수천만 원어치 치료만 받고 나가는 외국인이 많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43억9000만 원어치 진료를 받은 외국인 피부양자 사례가 공개되기도 했다.
▷퇴직을 앞둔 직장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가 ‘건보료 폭탄’이다. “자식 밑으로 들어가 있는데 금융 소득이 늘어 피부양자 탈락 안내문이 왔다” “연금 수입 늘었다고 피부양 자격 박탈이 말이 되느냐”는 선배 퇴직자들의 경험담이 남 일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 정도 외엔 시행하는 나라가 없는 피부양자 제도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1977년 체제 경쟁 시절 북한의 무상의료를 의식해 도입한 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사회보험으로 꼽힌다. 이런 제도의 혜택을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