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흑사병 수준’ 초고속 산아제한…과연 그때만큼 애쓰고 있나[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입력 | 2023-12-08 14:00:00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23년 12월 2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로스 다우섯 칼럼.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용띠 해가 다가온다. 한때 한국은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다. 식민지라는 암울한 과거를 딛고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전범이 됐고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한데 이제 한국은 전혀 다른 소재로 새로이 연구 대상이 될 판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섯은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은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인구 감소의 놀라운 사례연구 대상’이라고 썼다. 그는 한국의 인구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많은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 자녀 6, 7명 불과 한 세대 전…가족계획 시작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그것도 그냥 꼴찌가 아니라 ‘압도적 꼴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합계출산율(fertility rate) 가장 최신 자료(2021년)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0.81명으로 전체 54개 조사국 중 가장 적었고, 2위인 말타(1.13명), 3위 중국(1.16명)과도 큰 차이가 났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의 평균을 의미한다.



지난 60여 년간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에서 사람들은 왜 아이를 안 낳게 됐을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산아제한정책이 있었다. 합계출산율이 예닐곱 명이었던 시절도 멀지 않다. 현재 가임기인 30, 40대의 불과 부모님 세대 일이다. 1950~60년대 합계출산율은 6~7명이었다. 나의 양가 부모님도 형제가 5~6명이고, 시할머니의 경우 무려 9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한국의 ‘베이비붐’ 시기인 1955년부터 1963년 태어난 출생아는 줄잡아 710만 명에 이른다. 한 해 거의 100만 명 가까운 아이들이 태어난 셈이다.

본래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이 높아 ‘자식 농사는 반타작’이었고, 그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았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이기도 한 만큼 대체로 자녀 5~10명을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들어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무엇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한국의 상황은 많은 인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됐고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도 없는데, 인구 대다수는 가난했다. 나라 살림이 거덜 난 상황에서 인구, 그것도 가난한 인구의 증가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인구 억제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가족계획 사업’이라는 타이틀 아래 전 국민 ‘계몽 사업’을 시작한다.

1960년대 가족계획 캠페인 문구. 대한뉴스 캡처.

가족계획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캠페인, 피임시술, 인센티브까지…전방위 산아제한정책
국민 대부분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만 해봤지, 피임이란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 교육과 홍보가 시작됐다. 당시 나온 직관적이고도 입에 착 붙는 공익광고 문구들은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3-3-35 운동’이라는 것도 있었다. ‘세 자녀(3)를 세 살 터울(3)로 낳아 서른다섯에 단산하자(35)’는 의미의 전국적 캠페인이었다.

1960년대 피임약 광고. 동아일보DB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엔 국가가 직접 나서 피임 시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 보건소와 가족계획 시범진료소를 설치해 무료 피임 시술을 시행했다. 임신중절은 합법이었고, 월경 조정술도 보급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전두환 정권은 출산 억제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 이제는 셋, 둘도 아니라 하나만 낳으라는 표어들이 등장했다.

‘인센티브 방식’도 널리 활용된다. 불임시술을 받으면 공공주택 우선 입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예비군 훈련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셋째를 출산하면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존에 가족계획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불리던 정책이 산아제한정책이라는 보다 명징한, 목표지향적 이름으로 바뀐 것도 이때였다.

● 출산율 2명 아래 떨어졌는데…정부의 오판
하지만 정부가 인구 제한에 이렇게 한 번 더 속도를 냈던 1980년대 초 이미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 전후 합계출산율은 2명대로 떨어졌다. 단 20년 만에 한 여성이 낳는 아이 수가 3분의 1 이상 급락한 것이다. 출산율 2명대는 여자와 남자 2명이 만나 평균 두 아이 낳는다는 뜻이니, 인구가 현상 유지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출산율이 이보다 더 떨어진다면 그것은 인구 감소였다. 그런데 정부는 인구 정책을 선회하지 않았고, 산아제한을 계속했다. 결국 합계출산율은 떨어지던 속도 그대로 더 떨어져 1984년 2명선이 붕괴했다. 정부가 출산율 수치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왜 출산율이 2명대에 이른 시점에 인구 억제에 더 속도를 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산아제한 수요가 높았다는 점, 맬서스 이론(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언제든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늘고 여러 보육 여건이 개선되면서, 각 가정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출산율과 관계없이 출생아 수가 많았던 점도 정부가 상황을 안일하게 보고 오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출산율이 짧은 기간 3분의 1 수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는데도 1980, 1981년 한 해 출생아 수는 여전히 80만 명대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 세대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수백만 명씩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이때 출생아들은 베이비붐의 메아리란 의미로 ‘에코 세대라 불렸다. 이들의 ’인해전술‘로 인해 출산율 급감 문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많은 출생아로 인해 ’정책 효과가 충분치 않은가‘ 고민하는 관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 저출산 타계…산아제한 때만큼 애쓰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때가 초저출산 위기를 초기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이후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져서 정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출생아 수까지 붕괴하기 시작했고, 1990년 출생아 수는 6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정부는 뒤늦게 피임 사업을 중단하고 산아제한정책도 철회하는 등 정책을 급선회했다. 하지만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흐름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래는 저출산이 지금보다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출생한 아이들은 20, 30년 뒤 부모가 된다. 즉 출생아 감소는 ‘미래의 부모’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엄마, 아빠의 수가 줄면 합계출산율이 증가한대도 정작 출생아 수는 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부모 세대 수가 많아서 출산율이 떨어져도 출생아 수가 많았던 과거처럼 말이다. 실제 출산율이 1.18명이던 2002년 출생아 수는 49만6911명이었는데, 출산율이 1.3명으로 더 높아진 2012년 출생아 수는 48만4550명으로 더 줄었다.

그래도 역사를 통해 한 가지 희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은 정부 정책의 힘이다. 물론 인구 감소는 국제적인 흐름이었지만 우리 정부의 각종 계몽 사업과 적극적인 지원, 인센티브 정책은 다른 나라보다 인구를 훨씬 빠르게 급감시켰다. 반대로 인구 증가에도 그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자조가 아니라 자만이라 생각한다. 계층, 직업, 학력 등 상황별로 어떤 청년들이 아이를 더 낳고 덜 낳는지, 집과 일자리의 문제라는데 과연 그것이 주어진 전후 출산율에 차이가 있는지, 주요 저출산 정책 수혜자들의 출산에 변화가 있는지 등 기본적인 조사조차 안 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일·가정 양립의 기본인 유연한 근로 시간조차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사실상 민간으로 책임을 떠넘겼고, 학교 시간을 늘리자는 논의 등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사안들은 누구도 골치 아파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과연 정부는 그동안 ‘백 가지 약’을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