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 현장 올해 해외직구 물품 1억 건 달해… 10초 안에 검사 필요 여부 판독 적발 마약 정보 데이터베이스화… 패턴 분석해 단속 정확도 높여 여행객 마약밀수 1년새 75% 증가… 태국발 밀반입 늘고 중량도 커져
《인천공항 마약 단속 현장을 가다
신종 마약이 해외 직구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다 적발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여행자 가방을 통한 마약 밀반입 시도도 1년 전보다 75% 늘었다.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 인천공항 세관의 단속 현장을 집중 조명했다.》
5일 인천공항본부세관 마약정보분석팀 직원들이 마약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승객의 가방을 열어 살펴보고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세관 직원 4, 5명이 모여 함께 분석에 들어갔다. 간이 시약 검사에선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A 씨는 다시 젤리에 대한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그는 “태국 등에서 유통되는 신종 대마 젤리일 수 있다”며 “확신이 들지 않을 때는 한 번 더 검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1년 새 1.5배 이상으로 늘어난 해외직구
판독실에선 15명의 직원이 앞에 놓인 대형 모니터 여러 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상자의 겉모습과 엑스레이 사진, 송장 정보 등이 떠올랐다. 송장 정보에 적힌 내용물이 실제 상자에 담긴 물건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상자 한 개를 확인하는 시간은 대략 2, 3초. 1차 검사기를 통과한 상자는 10초도 안 돼 2차 검사기로 보내진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검사가 필요한 상자인지 아닌지를 판독해야 한다. 직원들은 잠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갑자기 한 직원이 침묵을 깼다. 책상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그의 지시가 이어졌다. 화물을 분류하는 물류센터 직원에게 상자 하나를 따로 빼 달라는 것이었다.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이 이상하다고 했다. 엑스레이 판독실에서 근무한 지 27년이 된 이성희 주무관은 “엑스레이 판독실은 24시간 돌아가고 40여 명의 직원이 3교대로 근무한다”며 “한 명당 하루 평균 8000건의 화물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블랙프라이데이로 새벽 2시까지 야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존, 알리 등 해외의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직구가 대중화되면서 특별수송과 국제우편으로 들어오는 물품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지난달 특별수송과 국제우편으로 배송된 해외직구 물품은 1420만6000건으로 1년 전(875만8000건)보다 1.5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 들어 11월까지 특별수송과 국제우편으로 들어온 해외직구 물품은 1억1639만6000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해외직구 물품(9612만 건)을 넘어섰다. 그만큼 숨겨진 마약을 찾아내야 하는 세관 직원들의 긴장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끝나자 여행객 마약 밀반입 급증
5일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국제우편통관센터에서 발견된 젤리.
조주성 마약정보분석팀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분석팀 직원들의 마약 검사 노하우가 상당히 쌓였다”며 “마약정보분석팀은 화물 속 마약을 직접 검사하기도 하지만 마약 밀반입 패턴을 분석해 단속의 정확도를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분석팀 한 명당 하루 15건의 화물을 검사하는데 연말에 화물이 늘면서 20건 이상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약정보분석팀은 현재 전체 지역 세관 내에서 마약 밀반입 적발 실적 1위를 기록 중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이 팀에서만 170여 건의 마약 밀반입 사례를 적발했다.
올 들어 마약 밀수는 대형화되는 추세다. 1∼10월 관세청이 적발한 마약은 556kg이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8% 늘어난 규모다. 반면 적발 건수는 574건으로 전년보다 7% 줄었다. 특히 세관에 적발된 마약의 78%(중량 기준)는 특별수송과 국제우편을 통한 밀반입이었다. 국제우편으로 들여오다 적발된 마약이 280kg(50%)이었고, 특별수송에서 적발된 양은 153kg(28%)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급감했던 여행자의 가방 등을 통한 마약 밀반입도 다시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여행자 밀수 적발 건수는 145건으로 1년 전보다 75% 늘었다. 중량으로는 총 111kg으로 지난해(36kg)의 3배가 넘는다. 2020년과 2021년 여행자 밀수 적발 중량은 각각 55kg, 12kg이었다.
올해는 태국에서 마약을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올해 세관에서 적발된 것 중 태국을 통해 들어오던 마약은 142kg이었다. 지난해 1위였던 미국에서 들어오던 마약은 130kg이 적발됐다. 라오스(63kg), 베트남(41kg) 등이 뒤를 이었다. 세관 관계자는 “태국이 마약을 합법화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태국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태국발(發) 마약 밀반입도 덩달아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필로폰과 대마가 적발된 마약의 74%
올 들어 10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은 2만2393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늘었다. 그만큼 세관의 감시망을 뚫고 국내에 들어온 마약도 적지 않은 셈이다. 관세청은 마약 밀반입 적발을 강화하기 위해 올 10월부터 마약 단속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마약 밀수 특별대책 추진단’도 운영 중이다. 추진단에는 검사가 쉽지 않은 신종 마약을 찾아내기 위해 장비 및 연구개발 부서가 포함됐다. 또 고위험국에서 들어오는 화물은 일반 화물과 구분해 집중검사를 실시하고 우범국에서 오는 우편물 역시 검사 건수를 50% 이상 높인다.
아울러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세관들과의 국제 공조 체계도 강화했다. 관세청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관세청과 마약 밀수 합동 단속과 마약 우범자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대마 일부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와도 올해 9월 한 달간 한국행 마약 의심 화물을 합동 검사했다. 주요 마약 적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에서 들여오다 적발된 마약 밀반입 건수는 월평균 6건에서 9건으로 50% 늘었다. 올 3월부터 6월까지는 태국 관세당국과 현지 마약 합동 단속을 벌여 태국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려던 마약 49건, 72kg을 적발했다. 채명석 마약정보분석팀 주무관은 “마약을 적발하면 국내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은닉 방법이 갈수록 치밀해져 단속이 쉽진 않지만 최대한 많은 마약을 잡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천=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