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대문학 거장 코맥 매카시 유작… 수면 아래 진실 향해 입수한 남자와 한 수학자의 산산조각 난 내면 세계… 현실과 환상 가로지르는 연작 소설 ◇패신저/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736쪽·1만9800원·문학동네 ◇스텔라 마리스/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336쪽·1만7000원·문학동네
올해 6월 세상을 떠난 미국 ‘서부의 셰익스피어’ 코맥 매카시.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는 매카시가 지난해 발표한 연작 장편소설로, 그의 유작이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영, 실재와 의식에 대한 저자의 오랜 고민을 녹여 냈다. 문학동네 제공 ⓒDerek Shapton
바다로 추락한 비행기의 실체는 수면 위에선 보이지 않았다. “뭐든 사라진 거”를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인양 잠수부’ 보비 웨스턴이 물밑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그가 물밑 12m 깊이까지 잠수해 비행기 창에 손전등을 비춰 보니, 승객 7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물에 둥둥 떠 있었고, 눈은 공허했다. 생존자는 없었다. 그런데 어떤 뉴스도 들리지 않았다. 시신을 건지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모른다면 그들의 삶과 죽음조차 없던 일이 될까. 보비는 암흑으로 둘러싸인 심해를 두려워하면서도 계속해서 물밑으로 이끌린다.
두 소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보비의 이야기가 물밑의 세계를 다룬다면, 조현병을 앓는 수학자 얼리샤의 이야기는 수(數)의 세계와 산산이 조각난 의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얼리샤의 방 안엔 ‘키드’라 불리는 난쟁이를 비롯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이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리샤의 머릿속에선 콧구멍의 털과 귓구멍 안 생김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생생한 모습으로 어른거린다. 그렇다면 ‘키드’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리샤는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간 의식과 실재가 같은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서부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저자는 유작에서 삶과 죽음, 현실과 환영, 실재와 의식에 대한 오랜 고민을 녹여 냈다. 수학과 양자물리학 담론 등 현대 문명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천착해 내용은 비교적 난해한 편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을 겪은 남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던지고자 한 질문은 인류가 오랜 시간 품어온 질문과 다르지 않다. ‘죽음 이후는 허무뿐일까.’ 얼리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방정식들이 거기 내 눈앞에 실재한다는 걸 이해했어요. 그게 현실 속에 있다는 걸. 그건 종이 안에, 잉크 안에, 내 안에 있었어요. 우주 안에.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그것 또는 그 존재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어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