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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도 꽂혔다, 사우디판 디즈니월드 ‘키디야’[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입력 | 2023-12-10 08:00:00

엑스포 유치 후 ‘키디야 프로젝트’ 강조
‘서울 절반’ 크기의 엔터테인먼트 도시
자국 관광 수요와 해외 투자 유치 목적도
관광대국 도약에는 여전히 제약 많아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키디야(Qiddiya)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장소가 될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현재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 인근에 개발 중인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 키디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한국 부산, 이탈리아 로마와 경쟁했던 ‘2030 엑스포’를 유치한지 9일 만이었다.

7일(현지 시간) 현지 영문매체인 아랍뉴스와 국영 SPA 통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키디야가) 사우디의 경제 성장, 국제 평가, 전략적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는 ‘2030 엑스포’ 유치가 확정되고 9일 뒤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 인근에 개발 중인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 ‘키디야’ 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AP



● 사막 위 서울 절반 크기 엔터테인먼트 도시
키디야는 리야드 남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사막지대에 개발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다. 규모는 334km²로 서울시(약 605km²)의 절반을 넘는다.

미국 테마파크인 ‘식스플래그’와 대형 워터파크를 중심으로 골프장, 자동차 경주장, 올림픽박물관, 호텔, 공연 시설 등이 키디야에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에 개발 계획이 발표됐고, 건설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키디야에 들어설 예정인 미국 테마파크 ‘식스플래그’ 건설 현장. 키디야 투자회사 홈페이지 캡처

키디야 워터파크 건설 현장. 키디야 투자회사 홈페이지 캡처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의 중·장기 경제사회 개발 계획인 ‘비전 2030’에도 키디야 개발은 주요 사업으로 포함돼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 개발을 담당하는 ‘키디야 투자회사(Qiddiya Investment Company·QIC)’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네옴 프로젝트’에 가려져 키디야는 유명세를 덜 탔다. 사업 규모로만 보면 사실 상대가 안 된다. 네옴은 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9월까지만 해도 이슬람 성지순례를 제외한 관광은 사실상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에 생기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란 점에서 키디야는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이 가장 적극적이다. 2019년 10월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일명 사막의 다보스 포럼)’ 행사 때 삼성물산은 QIC와 키디야 개발과 관련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삼성물산은 키디야에 들어설 일부 시설에 대한 건설을 담당하고,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에스원 등도 각각 전자제품, 정보기술(IT) 플랫폼, 보안시스템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 기도(Pray)가 아닌 즐기는(Play) 도시
키디야는 말 그대로 ‘즐기는 도시’를 지향한다. 키디야 인터넷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나오는 브랜드 슬로건은 ‘Play Life(인생을 즐겨라)’다.


키디야 워터파크 조감도. 아랍뉴스 홈페이지 캡처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로 유명하고, 엄격한 율법과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사우디와 잘 안 어울린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일까.

올해 2월 ‘제2회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리야드를 찾았을 때 만난 사우디 관광청과 미디어부 관계자들도 키디야가 즐기는 장소임을 강조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영어로 키디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도(Pray)하는 곳이 아니라 즐기는(Play) 곳이다”라고 웃으며 강조했다.

QIC에 따르면 식스플래그와 워터파크 공사는 현재 각각 59%와 61% 수준으로 진행됐다. 장기적으로 사우디는 키디야에 총 6만여 개의 건물을 세우고, 60만 명이 거주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 문화콘텐츠 인프라 키워 젊은층 민심 잡기
사우디가 키디야 개발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자국 내 문화콘텐츠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사우디에는 그동안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 관련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인구 3220만 명(자국민 1880만 명‧2022년 사우디 통계청의 인구조사 기준)에 이르는 세계적인 자원 부국에 디즈니랜드와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가 전혀 없었던 것.

사우디 최초의 테마파크로 리야드에 자리 잡고 있는 ‘블러바드월드’도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2019년 10월 리야드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콘서트는 사우디에서 열린 비아랍권 가수의 첫 번째 야외 콘서트였다.

2019년 10월 사우디 리야드의 킹파드국제경기장에서 열린 BTS 콘서트를 찾은 사우디 여성들. 이 콘서트는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비아랍권 가수의 야외 콘서트였다. 동아일보 DB

쉽게 말해, 이전까지는 공연과 테마파크 같은 ‘기본적인 대중문화 활동’도 사우디 안에선 즐길 수 없었다. 이를 즐기려면 다른 나라로 가야 했다. 사우디와 가깝고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사우디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문화콘텐츠 인프라’는 아쉬운 점,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이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사우디가 대중문화 개방 속도를 높이고, 콘텐츠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올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과 대중문화를 즐겼고, 개인적으로도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한국 콘텐츠 기업에도 파격적으로 투자했다. 올해 초 PIF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약 6000억 원을 투자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게임 기업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각각 약 2조3000억 원, 약 1조1000억 원을 투자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많이 받아왔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려면 앞으로도 이들의 지지가 중요하다”며 “젊은 세대의 민심을 중요하게 반영한다는 차원에서도 키디야 프로젝트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 육성에 계속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비석유 산업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에도 필요
무함마드 왕세자가 강조하는 사우디의 비석유 산업 육성과도 키디야 개발은 관련 있다.

비석유 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관광 산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우디는 키디야 개발을 통해 32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또 키디야에 연간 4800만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려고 한다. 석유가 아닌 산업에서 대규모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도 문화콘텐츠 산업은 중요하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회‧문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우수한 인력들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한 나라의 콘텐츠 산업 역량은 계속 중요해지고 있다”며 “사우디 같이 오랜 기간 개방적이지 않았던 나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소프트파워 관련 인프라와 산업을 육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술 없는 관광대국’ 가능할까

사우디는 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와 메디나)을 보유하고 있는 ‘성지 수호국’이다. 사진은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모스크’. 동아일보 DB

하지만 키디야 개발, 나아가 사우디 정부가 공 들이고 있는 ‘관광대국으로의 도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수요는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과연 사우디가 희망하는 것처럼 대규모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까지 가능하겠냐는 것.

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답게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술과 돼지고기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사우디 영공에서는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도 원칙적으로 주류 서비스를 해서는 안 될 정도다.

카타르, UAE, 바레인 같은 주변 나라들이 외국인에게는 술과 돼지고기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격함이다. 이집트, 모로코, 튀르키예 같이 고대 유적지와 리조트 같은 관광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고 술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나라들과는 처음부터 비교가 어렵다.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한 기업인은 “정부가 육성에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개발 계획으로 사우디의 관광 산업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금처럼 술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