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에이스 시절 손민한의 투구 모습. 그리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롯데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평가받았다. 동아일보 DB
셋 중 유일한 투수였던 손민한은 ‘전국구 에이스’였다. 소속팀 롯데는 거의 매년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손민한만큼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좋은 투수였다. 연패를 거듭하던 롯데는 손민한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만 1승을 거두고 다시 연패에 빠지곤 했다.
2005년 손민한은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빼어난 성적으로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그해에도 롯데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 손민한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팀 출신의 MVP가 됐다. 손민한은 “1년 다 같이 고생하고 혼자 상을 받은 게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모든 야구 선수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상이지만 내게는 동시에 슬픈 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민한(왼쪽)과 영혼의 단짝이었던 포수 강민호.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운영으로 경기를 빨리 끝내곤 했다. 동아일보 DB
그에겐 강민호(현 삼성)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었다. 강민호 역시 공격적인 볼 배합으로 경기를 빠르게 이끌어가는 포수였다. 손민한은 “많은 포수들이 타자가 못 치게끔 사인을 낸다. 하지만 나도 민호도 타자가 방망이를 내게 만들자는 주의였다. 다만 정확하게만 맞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두려움 없는 투구로 그는 롯데와 NC에서 뛰며 123승을 거뒀다.
손민한은 제1회 WBC때 공 3개로 당대 최고의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돌려세웠다. SBS 중계화면 캡처
지금도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명장면 중 하나는 손민한인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였던 로드리게스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낸 것이다. 손민한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로드리게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타석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덩치도 좋지, 방망이도 길지, 어디에 던져도 다 칠 것만 같았다. 잘못하면 타구가 나한테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들었다.”
올해부터 부경고 투수 코치로 부임한 손민한(오른쪽)이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손민한 제공
N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손민한과 놀자’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손민한의 모습. NC 제공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하는 건 그에겐 즐거움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부경고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착실히 선수들을 키워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켜 보는 게 그의 목표다. 손민한은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 한다. 학생 야구는 더더욱 즐거워야 한다. 프로든 아마든 지도자라면 무엇보다 선수들이 마음껏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맞다”며 “현재는 우리 팀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기본기를 충실이 쌓아 올리다 보면 내후년쯤에는 누구도 무시못할 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부터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했다. N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그는 구단 및 경남 교육청과 함께 3년간 ‘손민한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남 지역 내 초중고교들 돌며 아이들과 야구로 놀아주는 행사였다. 그는 “도내 곳곳 안 가본 데가 없다. 정식 코치가 되면서 그만두게 됐지만 하는 내내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손민한은 각종 국제대회의 단골손님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6년 제1회 WBC, 2009년 제2회 WBC 등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동아일보 DB
원래부터 먹는 데 대한 욕심에 크게 없었던 그는 선수 시절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아마추어 때는 조금이라도 더 몸을 키우기 위해, 프로 선수 때는 더 힘을 쓰기 위해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지금은 자신의 양만큼만 먹어도 되니 속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왜 이렇게 적게 먹느냐고 할 정도로 양이 적은 편이다. 속이 더부룩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소식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이다. 저녁 훈련 전 급식으로 저녁을 먹는다는 그는 “칼로리가 충분하고 신선한 야채도 많이 나온다. 학생들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겐 급식이 최고의 식사”라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뛰고, 공을 던진다.
손민한은 NC에서 선수 생활을 마지막을 보냈다. 은퇴한 2015년에 그는 11승을 거두고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동아일보 DB
몇해 전에는 부산에서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다. 야구에선 ‘천하의 손민한’이었지만 당구 대회에선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한국시리즈보다 더 떨었던 것 같다.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제대로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바로 떨어졌다. 그날 이후 대회엔 나가지 않고 있다”며 했다.
손민한은 요즘 규칙적인 생활과 소식으로 건강을 지킨다. 이헌재 기자
롯데의 암흑기를 홀로 지탱했던 그는 야구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롯데에 대한 애정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는 “더 좋은 팀에 있는 게 좋지 않았겠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롯데는 내게 기회의 팀이었다. 암흑기 시절에도 힘들다기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다”며 “‘명장’인 김태형 감독님이 오셨으니 내년에 롯데는 훨씬 좋은 팀이 될 것이다. 1년 정도 감독님의 야구 색깔을 입힌 뒤 내후년쯤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