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 보안사령관(오른쪽)이 보안사 수사과장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서울 한남동에서 총소리를 들었다는 시민 전화를 받고 현장 취재에 나간 기자들과 회사에 소집된 기자들은 급변하던 그날 상황을 각각의 역사적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13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987년 11월 특집 연재 기획 ‘12·12 수수께끼’(1987년 11월 14∼24일)를 통해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날의 세부를 까발렸다. 그때 기록을 보면 지금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여기서 기사는 12·12 군사반란이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고 민주화를 늦춘 사건이라는 의의를 중시한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 각자의 대의나 욕망은 기사에선 모두 의견이자 주장으로만 처리된다. 그리고 어떤 주장이나 의견도 역사적 심판(민주화를 늦어지게 한 사건)이나 의의를 넘어설 순 없다. 기사는 증언을 최대한 수집하되 진실은 대립하는 의견 속 어딘가쯤에 위치한다고 여긴다.
예컨대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두고선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 재가 요청을 물리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의견과 “정승화 총장이 12월 9일 급박하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전보 인사를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별 조치 없이 48시간을 끌었다”란 김치열 전 법무부 장관 비판이 상존한다는 점을 당시 기사는 밝히고 있다. 우유부단해 실기했다거나 군 실세의 재가 요청을 물리친 강골이라는 상반된 평가 중간 어디쯤 진실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되, 역사적 의의를 무겁게 여기는 것. 또 반대로 결론을 엄연하게 여기되 동시에 역사 주체들의 의도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 냉정한 역사 인식은 이 사이를 오가는 것이어야 한다.
12·12 군사반란 당일 긴박한 시간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팩트에 기반한다지만 캐릭터를 명확하고 단순하게 설정해, 많은 부분 상상력에 기댄 의견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방송 재연극이 다수 있었는데, 이전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동안의 재연이 대부분 신군부 세력이 어떻게 권력 획득에 성공했는지를 조명하는 데 집중했던 반면 이번엔 진압군의 실패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며 중심축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기존 서사 중심축을 흔들기 위해 영화 편집은 훗날 신군부 세력과 반란을 진압하는 육군본부 지휘체계를 빠르게 오가며, 진영을 교차하는 것만으로도 팽팽한 기싸움이 느껴지게끔 한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다른 재연극들이 대개 5공의 종말까지 다루면서 권력 앞에 의리란 덧없다는 교훈까지 나아가는 것과 달리, 영화는 그저 권력욕이 비루하다고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정말이지 권력이란 무엇일까. 서울의 봄을 비롯한 숱한 해석들과 여러 관점 속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맞춰보고 싶어진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