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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유전자 가위’ 치료제 英·美 승인, 원천 기술 갖고도 멈춰선 韓

입력 | 2023-12-12 00:08:00

뉴시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료제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승인을 받았다. 유전자 가위는 세포에서 원하는 부위의 유전자(DNA)를 잘라내 교정하는 기술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이 치료제로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류가 직접 DNA를 고쳐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유전성 희귀질환, 암 등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원반 모양인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바뀌는 병인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에게 유전자 가위 치료제 사용을 승인했다. 치료제 개발에는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사용됐다. 환자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해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낸 뒤 다시 환자 자신에게 이식하는 방식으로, 한 번에 영구적 치료가 가능하다. 이번 승인을 계기로 연구 수준에 머물던 유전자 가위 치료제의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유전자 가위 기술 자체만 놓고 보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누가 가장 먼저 개발했는지를 놓고 3개 그룹이 다투고 있는데 이 중 한 곳이 국내 기업일 정도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유전자 치료제 연구가 가능한 분야가 제한돼 있고 인체 대상 임상 규제도 엄격하기 때문이다. 국내 임상 인프라도 부족해 해외 제약사와의 공동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한 의대 연구진은 선천 망막 질환 치료제를 4세대 기술인 ‘프라임 편집기’ 기술로 개발했지만 정부로부터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임상시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 적용이 활발한 농업 부문에서도 한국은 상용화 자체가 사실상 막혀 있다. 유전자 교정 식품에 유해성 심사 등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비타민D가 함유된 토마토 등을 개발하고도 출시조차 못 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첨단 바이오의 핵심 기술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법체계와 규제를 정비하고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산업을 키워야 한다. 기술력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원천 기술을 갖고도 다른 나라의 등 뒤만 바라봐야 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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