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A 씨는 2014년 서울 성동구에 23.1㎡(약 7평)의 소형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어릴 적 자신을 돌봐준 유모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투병 생활을 하느라 돌보지 못한 A 씨 등 5남매를 이 유모는 정성스레 키웠다. 그 고마움을 간직했던 A 씨는 뒤늦게 유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산다는 걸 알게 됐고, 형제자매들과 상의해 거처를 마련해준 것이다. 다만 A 씨는 오피스텔 명의를 아들 B 씨의 이름으로 했다. 유모가 숨지면 자연스레 아들의 소유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됐다.
▷7년이 지난 2021년 40대 아들 B 씨는 돌연 유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오피스텔을 비워주고 그동안 안 낸 임차료 1300만 원까지 내라는 것이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들은 그동안 모은 돈과 증여를 통해 오피스텔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90대에 치매를 앓아 거동조차 불편한 유모는 전혀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아들이 자신의 명의로 해준 것에 고마워하기는커녕 친어머니처럼 여기던 유모를 내쫓으려 했다는 것이 아버지로선 얼마나 야속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아들 편이 아닌 유모 편에 섰다. 혈연관계가 아니어서 유모의 소송을 대리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자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을 찾아다니며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까다롭다며 난색을 표하던 공단 측도 그의 거듭된 호소에 소송에 나섰다. 유모의 성년후견인이 되는 복잡한 절차를 밟았고, 유모의 인적사항 등 기본 서류부터 다양한 재판 서류를 일일이 준비해 제출했다. 또 공인중개사를 설득해 매매 당시 아들에게 명의를 신탁한 것이라는 증언을 하게 했다고 한다. 오피스텔은 실제로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이라며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소송도 별도로 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어릴 적 자신을 돌봐준 유모를 지키려는 70대 아버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으려 그런 아버지와 소송을 벌인 40대 전문직 아들의 사연에 감동과 씁쓸함이 교차한다. 아들은 머지않아 자신의 몫이 될 재산에 욕심을 부리다 오피스텔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말았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길러준 유모에게 끝까지 보은한 아버지 A 씨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비록 재판까지 갔지만 아들도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