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제도 못 풀고 답보 상태인 노동개혁 고용 유연성, 안정성 조화시키는 방향이 중요 참신한 보수는 포용적 성장의 길 열어놔야 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산업노동정책 연구소 소장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작년 말 화물연대 2차 파업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강공으로 시작된 보수층을 겨냥한 정책 기조는 근로시간제도 등 내용적인 노동개혁에서 의미가 모호해졌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해결한다면서 정작 고용의 양극화 문제에는 손도 대지 않고 다 같이 장시간 노동하는 방식을 추진한 것만 눈에 띌 뿐이다. 그저 과거로의 퇴행에 불과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뚜렷하게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이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120시간 발언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최장 주 69시간 이상 일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다 젊은 층을 비롯해 대중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추진 3개월 만에 노동자 의견조사의 형식으로 일부 업종 직종에 추진 필요성이 있다며 마무리 지었다. 정책 추진 여부를 의견조사로 판가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옹색하기 그지없다. 의견조사 결과에서도 계속 추진할 명분은 드러나지 않는다. 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없다는 응답이 82%에 이른다. 일부 업종(제조업)의 찬성이 절반이 넘는다는 응답은 ‘좀 더 일할 수 있는 제도 개편이 필요한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일 뿐이다. 그 질문에 대한 찬성이 30% 정도인 건설업을 끼워 넣은 것도 문제다.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의견조사로 확인하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란 점이 다시 확인됐음에도, 이미 끝난 일에 집착하며 소통 불가의 이미지만 덧붙이고 말았다.
다른 정책도 보수의 안정감과 시대에 맞는 보수라는 참신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동조직에 대한 공세의 연장선에서 시작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공세는 노동조합의 90% 이상 회계장부 공개로 매듭지어져 정부가 명분을 얻기는 했지만, 내용이 바뀐 건 사실상 없다. 1980년대 초 반노동과 친기업이라는 당시 신보수의 전형을 만든 영국 대처와 미국 레이건 정부의 정책을 떠올리게 했으나, 현시점에서 왜 필요한지를 납득시키진 못했다. 지금 시대는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인 플랫폼 노동자가 확대되고 있고, 전체적인 노동과 삶의 불안정도 깊어지고 있다. 노동 규제 완화와 고용 유연화를 촉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게 과거 유행했던 보수의 행태만 따라 해서는 공감은커녕 실망감만 더해 준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하나의 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연성을 강조하며 형평성을 포기하는 미국형 규제 완화의 길, 이중 구조의 질곡을 방지하지 못하고 갇혀버린 메르켈 이전의 독일의 길, 유연성과 안정성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연대적 안정성으로 승화시킨 덴마크의 길이 선택지로 놓여 있다. 깊어지는 노동의 불안정성이 이중 구조로 고착화하지 않도록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근로시간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으로 이중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협소하고 방향성도 모호한 노동개혁 기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참신한 보수는 포용적 성장의 길로 열려 있을 때 가능하다. 비공식 부문처럼 방치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시장 규제 제도로의 편입, 날로 늘어나고 노동조건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정책 방안 제시, 이전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반대급부로 예산만 대폭 삭감하고 대안은 포장만 뜯어고친 인턴 제도만 제시하고 만 청년 고용 대책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 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을 낳고 있는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직시하는 건 안정적 사회를 지향하는 보수 정부의 과제이다. 친기업 토대의 보수 정부가 누구보다 기업을 설득하고 동참시키기에 유리하다. 기존 지지 기반에만 안주하지 않고, 사회적 통합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노동개혁에 나서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수 정부의 모델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산업노동정책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