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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늪’에 빠진 OTT…수익 악화→요금 인상→고객 이탈[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12-12 23:36:00

OTT 업계 ‘생존경쟁’




《직장인 윤모 씨(29)는 이달부터 넷플릭스 구독을 해지했다.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를 제한하면서다. 윤 씨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비싼 1만7000원짜리 프리미엄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었다. 친구 셋과 계정을 공유해 월 4250원만 내면 됐다. 넷플릭스는 11월부터 최대 2명까지만 계정을 추가할 수 있고 같은 집이 아니면 인당 5000원씩 더 내도록 했다. 친구 한 명은 계정 공유를 하지 못하게 됐고, 나머지 세 명 각각의 부담액도 9000원으로 뛰었다. 윤 씨는 “처음엔 계정 공유를 내세워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하더니 이제와 추가로 돈을 내라는 법이 어디 있나”라며 “유튜브 프리미엄과 티빙도 가격이 올라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남혜정 산업1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이 이미 포화된 상태에서 구독자 확보를 위한 콘텐츠 투자비는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다.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한 OTT 서비스 업체들의 잇따른 ‘요금 인상’은 구독자들의 집단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 현상도 보인다.





● 가입자 수 정체 속 ‘콘텐츠 홍수’

12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주요 OTT들의 월간순이용자(MAU)는 겨우 유지되거나 소폭 줄고 있다. 넷플릭스는 8월 1222만5000여 명을 기록했다 지난달 1141만여 명으로 줄었다.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디즈니플러스도 7월 192만9000여 명에서 두 달 새 394만2000명으로 배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지난달엔 328만5000여 명으로 후퇴했다. 국내 OTT 업체인 쿠팡플레이와 티빙, 웨이브의 지난달 MAU는 8월 대비 나란히 10% 안팎 감소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구독자를 잡아 두기 위한 신규 콘텐츠는 ‘범람’에 가까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즈니플러스, 애플 TV 플러스, 쿠팡플레이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각 OTT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킬러 콘텐츠’들의 출시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스위트홈 시즌2’

디즈니플러스의 ‘비질란테’

티빙의 ‘이재, 곧 죽습니다’

넷플릭스는 올해 상반기(1∼6월)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더글로리’를 선보인 데 이어 하반기(7∼12월)에도 ‘이두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위트홈 시즌 2’ 등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잇따라 공개했다. 내년 1월까지 국내에 공개 예정인 콘텐츠는 14개에 달한다. 디즈니플러스의 ‘비질란테’, 티빙의 ‘운수 오진 날’과 ‘이재, 곧 죽습니다’ 등 신작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소비자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일부에선 “정작 볼 만한 게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콘텐츠 질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많은 기대를 받았다가 최근 공개된 한 콘텐츠의 예고편에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내용도 없고 컴퓨터그래픽(CG)도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 든다”는 등의 불만 어린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 수익성 회복 위한 요금 인상에 고객은 불만

증가하는 콘텐츠 투자비를 감당할 수 없는 OTT 업체들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결국 구독료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트림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림플레이션은 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유튜브는 8일부터 광고 없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 국내 구독료를 기존 월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으로 4450원(43%) 인상했다. 2020년 한 차례 요금을 인상한 후 두 번째인데, 인상폭이 40%가 넘는다. 유튜브는 “인플레이션 등 여러 경제적 요인에 따라 가격 조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달 광고 없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월 9900원에서 1만3900원으로 4000원(40%) 인상했다. 국내 OTT인 티빙도 이달부터 요금을 20%씩 인상했다. 프리미엄 요금 기준 월 1만39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올렸다. 넷플릭스는 5월부터 100여 개국에서 실시 중인 계정 공유 제한 조치를 11월 한국에도 적용하면서 사실상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당장 이용자들은 요금 인상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경기 불황에 고물가 행진으로 가계 부담이 커졌는데 20∼40%씩 구독료가 오른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모 씨(33)는 “가격이 저렴할 때는 딱히 볼 영상이 없어도 구독을 유지한 채로 두는 경우가 있었다”며 “서비스당 월 1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면 하나만 남겨 두고 다른 서비스들은 구독을 취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1월 들어 각 OTT 서비스별로 구독자가 대거 이탈한 것도 결국 이런 불만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독료 인상이 실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마케팅 리서치 기업 칸타가 조사한 결과 넷플릭스가 2월부터 스페인에서 계정 공유 사용자를 대상으로 월 5.99유로(약 8500원)를 추가 과금하자 1분기(1∼3월) 구독 취소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 합병, 번들상품 등 OTT의 새로운 ‘생존방식’

이용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우회 정보를 공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우회 방법은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인터넷주소(IP)를 해외로 바꾼 후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요금이 저렴한 국가 계정으로 가입하는 식이다. ‘정식 프리미엄 이용권 6개월, 12개월’이란 제목으로 요금이 저렴한 국가의 계정을 판매하는 불법 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제2의 누누티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 트래픽 통계 업체인 시밀러웹에 따르면 10월 A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의 접속 건수는 약 1950만 건으로 전달(350만 건) 대비 5.6배로 증가했다. B사이트, C사이트도 같은 달 각각 780만여 건, 120만여 건의 접속이 이뤄졌다.

요금 인상이 오히려 불법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트리거 역할을 해 기존 유료 구독자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OTT 서비스업체들은 새로운 생존방식을 찾는 중이다.

국내 대표 OTT 업체인 티빙과 웨이브는 4일 양사 간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넷플릭스에 대항할 국내 최대 OTT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11월 기준 양사 합산 MAU는 892만6800명이다. 업계 1위인 넷플릭스(1141만952명)와의 격차를 250만 명 이내로 좁힐 수 있다. 티빙과 웨이브 경영진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들의 자본력과 쿠팡플레이의 성장세 속에서 출혈 경쟁을 멈춰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합병 논의를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2개 서비스를 결합해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번들링’ 전략이 새로운 경쟁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과 파라마운트는 각각 자사 OTT인 애플TV 플러스와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묶음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 버라이즌은 자사 고객에게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의 맥스를 묶은 번들상품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번들상품 요금은 10달러로 두 서비스 요금을 각각 낼 때의 17달러보다 40% 이상 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최근 발간한 ‘글로벌 OTT 동향분석’을 통해 “OTT 시장이 포화 상태로 신규 가입자 확보와 수익 창출에 고전하고 있다”며 “서로 다른 OTT 교차 콘텐츠를 시청하는 고객을 붙잡는 상품이 확대되면서 구독자 이탈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남혜정 산업1부 기자 namduck2@donga.com